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백두산에 오르다

 

천지 앞에 섰다. 가슴이 쿵쾅대고 숨이 멎는 듯 했다. 웅장하고 푸르게 고요한 듯 힘찬 물들이 일제히 일어서 함성을 지르는 듯 했다. 말갛게 갠 하늘과 선선한 바람, 마음 같아선 태극기라도 흔들고 싶었다.

마음속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눈을 감고 두 팔 벌려 천지를 가슴에 담았다. 눈을 감고 가슴으로 느끼는 천지는 황홀했다. 오래전 아주 오래전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이 연상되고 불기둥이 치솟아 오르며 흘러내리는 것을 상상했다. 불구덩이 속에서 천지가 생기고 그 용암이 흘러 금강대협곡을 만드는 장관이 그려졌다.

아득한 순간 눈을 뜨고 천지를 보았다. 화산석을 만져보았다. 포슬포슬함이 그날의 온기가 남아있는 듯 했다. 이렇게 가슴 벅찬 순간이 살면서 얼마나 있었을까. 이대로 돌이 되어 천지에 머물러도 아쉽지 않을 것 같았다.

자연이 허락한 사람만이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듯 산을 오를 때 퍼붓던 소나기가 천지 앞에 서니 거짓말처럼 그쳤다. 많은 비와 안개로 1년 중 천지를 볼 수 있는 날이 불과 40여 일에 불과하다고 했는데 두 번 여행에 두 번 다 천지를 보았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장군봉 백운봉 천석봉 등에 둘러쌓인 천지는 99명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을 비롯하여 여러 전설이 있는 것을 보더라도 신비의 호수임엔 틀림없다. 수심이 384m의 깊이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기도 하다.

천지 오르는 길에 100여 종이 넘는다는 들꽃들이 낮게 흔들리며 여행객을 맞았고 한켠에서는 온천수가 끓어올랐다.

7월 초순이었는데 산등성이에는 잔설과 얼음이 허옇게 남아있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풍경이다. 한바탕 소나기를 쏟아내고는 시치미 뚝 떼는 하늘과 낮은 꽃들 어우러져 백두산 천지를 지켜내고 있다.

처음 백두산 여행 때는 북파코스를 선택했다. 숲길로 들면서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을 보는 듯 했다. 자작나무 숲을 볼 수 있었고 우거진 숲에서 백두산 호랑이가 어슬렁 걸어 나올 것 같았다. 관광버스에서 내려 지프차를 타고 올라갔다. 장백폭포 물줄기가 거세게 내리 꽂혔고 온천에서는 유황냄새가 풍기기도 했다. 천지 오르는 길이 구불구불해서 마치 대관령 옛길을 연상하게 했다.

몇 년 후 다시 찾은 서파코스는 북파코스와는 달리 계단을 이용했다. 1천442개의 계단이라고 했다. 계단을 오르면서 만나는 들꽃과 천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설렘이 힘겨움을 덜어줬다. 무엇보다 일행 중 다리를 다친 사람이 있어 가마를 타고 올라갔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가마를 들고 가는 사람을 보니 힘들다는 내색조차 할 수가 없어 일행들 모두가 힘을 내어 열심히 올랐다.

계단 끝에서 경계석을 만났다. 경계비 한쪽은 조선이고 또 다른 쪽은 중국이라고 적혀있어 북한과 중국의 경계를 표시하는 경계석임을 알 수 있었다. 경계석 좌측에 백두산 천지가 있었고 천지는 보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달랐다. 북파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과 형상이었다. 북파에서 본 천지가 웅장했다면 서파에서 본 천지는 고요한 듯 깊게 느껴졌다.

내 나라 내 땅이면서 중국을 통해야만 백두산에 오른다는 안타까움 때문인지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몇 번들 더 돌아보곤 했다. 천지, 부르기만 해도 가슴 벅찬 이름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