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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육·해·공군의 날이 따로 있었다. 육군은 국방경비대가 창설된 1946년 1월 15일을, 공군은 육군항공부대에서 공군이 독립한 1949년 10월 1일을, 해군은 초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손원일 제독 등이 주축이 돼 만든 해방병단( 海防兵團) 결단일인 1945년 11월 11일을 각각 창설기념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 마다 기념행사도 달리 치렀다. 그러던 것을 1956년 정부가 하나로 통합했다. 지금의 10월1일을 국군의 날 이다. 한국전쟁 때 낙동강까지 후퇴했던 아군이 반격하며 북진하던 중, 육군 3사단 23연대 3대대가 10월 1일 새벽 양양 부근에서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것 을 기념한 것이다.

사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국군의 날 행사는 정권의 권위를 과시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정치적으로 활용된 측면도 강했다. 수천명의 병력이 미사일과탱크 등을 앞세우고 옛 여의도광장에서 열병·분열을 하면서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충성을 외치는 모습은 가위 위압적이었다. 또 기념식과 열병식이 끝나면 서울 남대문에서 동대문까지 도보·기계화부대의 퍼레이드가 펼쳐졌는데 행사규모가 클 때는 3만명이 넘는 병력이 동 원돼 한달 이상 야영하면서 훈련을 했다.

법정공휴일 이던 국군의 날은 1980년대 말까지도 여전히 요란했다. 그러다 낭비 많은 전시성 행사라는 비난을 받게 되자 3년마다 행사를 치르기로 했고 1989년 육·해·공군본부가 모두 계룡대로 옮긴 뒤 엔 기념식을 아예 계룡대에서 거행했다. 1993년 문민시대에 걸맞지 않다는 이유로 이 마저 유야무야되는 듯했다. 이듬해에 장소를 계룡대에서 성남 서울비행장으로 옮기고, 서울 도심 퍼레이드도 부활시키는등 잠시 행사의 규모가 커지기도 했으나 대규모 행사는 5년마다 치르기로 다시 축소됐다.

오늘은 제70주년 국군의 날이다. 고희를 맞았지만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콘서트형태의 첫 야간 기념행사로 조촐히 치른다. 규모도 가장 축소됐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논의되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국군의 날이 ‘잊혀진 추억’으로 변 할 만큼 세상은 바뀌는 중이다./정준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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