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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맛

                             /한용국



함께 걷던 사람이

나무를 가리키며

앵두군요라고 말했다



붉고 동그란 열매들이

먼 나라의 언어 같았다

열매 속은

잉잉거리는 소리들로 가득했다



유월이군요

이상기후가 계속되지만

여전히 앵두는 익어가는군요



앵두 몇 알을 입에 넣었다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어디로 걸어 가는지?

알 수 없어졌다



이런 게 앵두 맛이군요

고개를 돌렸는데

앵두나무도 없고

함께 걷던 사람도 없었다


 

 

 

두 사람이 함께 걷다가 흩어진다. 한 사람은 너머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은 두리번거린다. 둘 중 한 사람이 멈춰 서서 ‘나무’처럼 생긴 것에 손을 댄다. 그가 말한다; “앵두군요.” 또 다른 ‘그’는 가까이 다가가서 ‘붉고 동그란 열매들’을 만진다. 마치 아주 먼 나라의 언어처럼, 뜻을 알 수 없는 소리들이 앵두의 내부에서 잉잉거린다. 한 사람이 침묵을 깨고 말한다. “유월이군요/ 이상기후가 계속되지만/ 여전히 앵두는 익어가는군요” 이상기후여서 앵두가 썩어갈 것만 같았는데, 나무의 내력이 깊어 열매의 목숨 또한 지킨다는 뜻일까. 아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럴지 모르겠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두 명의 화자가 함께 길을 걷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나무처럼 생긴 형상이 붉고 동그란 무엇을 밀어내는 것을 보게 된다. 먼 나라의 언어처럼 잉잉거리는 ‘그것’의 내부를 보고, ‘앵두’라는 이름을 붙인다. 앵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다만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기 때문에 그들은 앵두라는 ‘것’에 집중한다. 앵두 몇 알을 입에 넣고 씹으니, 문득 길의 방향과 목적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가 앵두의 ‘시큼한 맛’을 기억해내자 “앵두나무도 없고/ 함께 걷던 사람도 없”어진다. 결국 두 사람은 ‘앵두’라는 이름에 달라붙은 그림자일 뿐이다. 거기에는 의미를 확정하는 시간도 공간도 없다. 한 사람이 ‘기억’의 이뇨를 통해 과거와 미래로 흩어지면서 분열되었던 것이다. /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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