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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소방관은 국가가 아닌 ‘화마’와 싸워야 한다

 

소방관은 ‘국가’가 아닌 ‘화마’와 싸워야 한다. 2009년 2월 1일 부산 이기대 처마바위 인근 바다에서 한 남자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구조가 조금만 늦어도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파도가 심했던 터라 일반인 누구도 물에 뛰어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때마침 출동한 고 김범석 소방관이 바다로 몸을 던졌다. 파도가 심했지만 그는 헤쳐 나갔고, 결국 한 명의 생명을 살렸다. 그렇게 고 김범석 대원이 구조한 사람만 8년 동안 350명이 넘는다. 그는 조직에서는 베테랑이었고 시민에게는 영웅이었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이름도 생소한 혈관육종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혈관육종암은 혈관에서 암이 발생해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암인데, 의학계에서도 그 발병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희귀병이다. 그 때문에 고 김범석 대원은 암 판정을 받은 지 7개월 만에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김범석 대원의 공무상 사망을 인정할 수 없다고 통보한 것이다. 그 이유로 혈관육종암과 소방관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유족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공무원연금관리공단과의 싸움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선진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까.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은 소방관이 암에 걸렸을 때 공상으로 인정하고, 예외적으로 공상에 해당하지 않는 사례는 국가가 입증한다. 즉 입증 책임이 국가에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반대다. 입증 책임이 피해 당사자에게 있다. 소방관이 암에 걸리면 암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피해 당사자가 입증해야 한다. 때문에 피해 당사자는 항암 치료와 경제적 문제, 입증 책임까지 삼중고를 겪어야 한다.

더욱이 혈관육종암은 현대 의학에서도 그 발병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희귀병이다. 이를 피해 당사자에게 입증하라는 것은 공상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때문에 실제로 희귀암에 걸린 대원 중 일부는 소송해도 패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소송 자체를 포기하고 그 모든 것을 떠안는 경우가 많다.

공상추정법을 도입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공상추정법을 도입해 유해물질이 많은 현장에서 3년 이상 근무한 자가 희귀병에 걸리면 그 업무를 원인으로 추정해서 공상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현장 대원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피해 당사자에게 입증책임을 지우는 현 체제는 희귀병에 걸리면 결국 그 모든 책임은 피해 당사자가 감당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이는 유해물질이 만연한 현장에서 대원들을 주춤거리게 한다. 대원의 주춤거림은 능동적이고 과감하게 해야할 소방 활동에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이는 종국적으로 시민의 안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정부는 하루 빨리 공상추정법을 마련해야 한다. 아직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희소병과 업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할 자신이 없어서 그 모든 고통과 비용을 스스로 감당하고 있을 대원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국가는 소방관이 국가가 아닌 ‘화마’와의 싸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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