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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우물 허공에 울려 퍼진 노래의 꿈

 

 

 

불현듯 지금껏 글을 쓰게 된 원동력과 계기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결핍과 슬픔이 문학의 감성을 키우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뒤란에 우물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먹는 공동 우물이었다. 1년에 한 차례씩 음력 칠월 초하루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우물물을 다 퍼내고, 청년들은 밧줄을 타고 내려가 깊은 우물을 청소하였다. 그날은 소를 잡고 무병장수를 빌며 동네가 잘 되게 해달라는 고사를 지냈다.

나는 언제나 그 우물가에 혼자 앉아있기를 좋아했다. 특히 마음이 울적할 때면 가만히 우물을 들여다보았다. 그 우물 속에 동그랗게 내 얼굴이 비치고 거기다 노래를 부르면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어느새 울적했던 기분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우물을 들여다보며 참으로 노래를 많이 불렀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내 마음의 근심 걱정을 씻어 줄 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나르시시즘에 도취되듯 청아하게 울려 퍼진 노래로 기분이 좋아졌다.

뒤란에 홀로 나와 우물 속 들여다보면/ 키 높은 미루나무 별빛 달빛이 잠기고/ 괜스레 느껴 울던 슬픔 잔잔히 잦아드네/ 동그란 내 얼굴에 눈물처럼 고인 샘물/ 가만히 노래 부르면 낭랑히 울려 퍼지는/ 마음 속 행복의 두레박 우물물 길어올렸네

- 진순분,‘행복의 샘물’ 전문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고서 어머니는 어린 동생들만 데리고 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최전방으로 가셨다. 나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조부와 고모, 삼촌들과 생활하였다. 그때의 외로움과 그리움은 너무나 큰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나의 유일한 친구는 오직 일기장으로 무언가 쓰고 나면 외로움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다.

담임선생님께서 매일 일기장 검사를 하시며 잘 쓴 일기를 읽어주셨다. 그때 자주 내 일기가 뽑혔다. 이상하게도 내 일기를 읽을 때마다 선생님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면, 이어서 아이들 한 둘이 훌쩍이다가 반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여태까지 써온 일기장을 다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일기장은 수원시 교육장님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게 되었다. 그 순간 모든 슬픔이 사라지 듯 기쁨은 말로 다 형언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글 쓰는 일은 유일한 즐거움과 자신감을 주었고,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모든 상을 휩쓸어 오기 시작했다.

4학년 때 아버지가 불시 전역하여 낙향하셨지만 대신 힘겨운 생활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 기간에도 나는 대가족이 자는 방에서 불 켜고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우물가에 나와 모기에 뜯기지 않으려고 보자기를 쓰고 공부를 했다.

6학년 가을 어느 날, 그날도 우물가에서 시무룩하니 앉아있는데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셨다. “너도 수학여행 가거라!” 하시는 게 아닌가! 초등학교 6학년 가을 수학여행을 온양온천으로 가게 되었지만, 나는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걸 잘 알기에 수학여행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그런데 같은 반 친구가 물을 길러 왔다가 우리 어머니께 수학여행 간다고 자랑을 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없어도 그렇지, 6학년 수학여행인데 엄마가 그것도 못 보내주겠니? 왜 진작 말 안 했어?” 하실 때 나는 기쁘기도 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부터 행복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우물가에서 노래 부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세상은 결코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 열세 살 어린 나이에도 가난 때문에 어머니께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우물을 들여다보고 노래하며 스스로 마음의 위안을 느꼈던 일도, 언젠가는 좋은 일이 있을 거란 막연한 희망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글 쓰는 꿈을 키워왔다. 그 시절 비록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지만, 결핍과 슬픔의 정서가 오히려 문학의 감성을 키우는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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