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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쓸 데 없는 한자 표기 없애자

 

 

 

10월 9일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72돌 되는 날이다. 백성들이 자기의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것을 불쌍히 여겨 한글 창제 후 반포를 했다. 우리나라 역사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에 한글 창제는 경이로운 순간이다. 한글은 세계 문자 중에 창제 시기와 원리가 정확히 알려진 유일한 문자다. 창제 동기부터 피지배층을 위한 평등의 문자로 누구나 쉽고 평등하게 쓸 수 있도록 했다. 발음 작용을 반영하여 만든 과학적인 문자로 사람의 말소리를 가장 잘 적을 수 있는 이상적인 문자다. 한글 창제 과정과 운용법을 설명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계기록문화유산이다. 이는 한글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런데 우리 문자 생활은 비극적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 바깥벽에는 학교 이름이 한자로 크게 쓰여 있다. 옆에 중학교와 초등학교도 건물 가운데에 큼지막하게 한자로 썼다. 초등학교는 영자 표기도 크게 보인다.

다른 학교도 비슷한 구석이 많다. 교내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교훈탑이다. 커다란 돌덩이에 ‘교훈’이라는 글자부터 모두 한자로 써 있다. 건물 안에도 마찬가지다. 학교 교육목표, 연혁 그리고 안내도, 시설 배치도까지 모두 한자로 표기됐다. 학생들 가슴에 차고 다니는 배지는 그 중앙에 ‘中’자와 ‘高’자가 자리하고 있다. 학교 이름 자체를 한자로 표기하는 곳도 많다.

교차로에 서로 마주하고 학교들이 모두 한자로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을 외국인이 보면 중국인 학교가 모여 있다고 생각지 않을까. 우리가 한자 표기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 중국의 속국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우리는 고종 칙령에서 한글을 나라 글자로 밝힌 이래 한글 시대로 완벽하게 옮아왔다. 120여 년 동안 과도기를 거쳐 이제 완벽한 한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도 한자가 안 보이고, 교과서를 비롯해 웬만한 책에는 한자가 없다.

일상생활을 할 때 한자를 표기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여전히 한자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못된 습관을 고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시설이나 기타 교표 제정 당시에 아무 생각 없이 썼던 것이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국어는 70%가 한자어다. 오랫동안 한자 문화권에 언어가 생성된 결과다. 이런 역사적 맥락은 있지만, 오랜 한글 표기 언어생활로 한자어 없이도 의미 표현이 가능하다. 한자 표기가 꼭 필요한 학문적 글에는 어쩔 수 없이 한자를 병기할 수 있다. 그 외에는 한자 표기가 오히려 어색하고 낯설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언어생활과 함께 한자 표기를 배격해야 하는 일이다. 공원 등에 동상이나 기타 시설물을 만들고 한자로 써 놓은 것을 본다. 특정 단체의 임명장이나 문서 등에 아직도 한자를 쓰고 있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집안의 부고가 신문 하단에 광고처럼 실리는데 그때도 온통 한자다. 이런 것은 읽기도 어렵고 거부감이 든다.

최근 일선 학교의 ‘교감’이란 명칭을 ‘부교장’으로 변경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교감이라는 명칭이 일제 잔재식 표현이란 점에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달렸다. 국회가 이번 기회에 다른 법을 발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4년 국회의원 배지에 나라 국자 한자 문양을 ‘국회’라는 한글 표기로 바꾼 것처럼, 학교를 비롯한 공공 기관에 반드시 한글 표기를 하라는 법안을 발의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무분별한 한자 표기로 우리 문자 생활에 혼란을 주고 주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국어기본법에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법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도 학교는 모국어 교육을 하는 곳으로 우리말 표기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방치하면 가래로도 못 막는다. 지금 우리 언어생활이 딱 그렇다. 학교에서부터 문자 생활을 바르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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