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리 속도를 내려하는지 쉽게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바로 정부의 대북 접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청와대에서는 판문점 선언의 국회비준을 촉구하고 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5·24 조치 해제를 “관련부처와 협의”하고 있다는 발언을 해서 곤혹을 치루고 있다.

강 장관의 발언의 경우, 강 장관 스스로가 발언을 축소하며 사과해서 일단락되는 것 같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다시 쟁점화 되고 있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 장관의 ‘5·24 제재’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approval)’이라는 단어를 쓴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일반적인 외교적 수사는 “승인”이 아니라 ‘협력(cooperation)’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과거에는 “협력” 혹은 “협의”라는 단어를 사용했지 “승인”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이런 단어를 사용한 것은, 미국이 지금의 우리 상황을 간단하게 보고 있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강경화 장관의 발언 자체보다는, 그동안 누적돼 온 미국의 우리에 대한 의구심이 이런 식의 표현으로 불거졌을 수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지난 10일 국정감사장에서 강경화 장관이 “인정한” 폼페이오 장관의 강력한 불만표시를 봐도 그렇다. 폼페이오 장관이 강경화 장관에게 전화를 해, 남북 군사 회담 결과에 대해 강력한 불만을 표시했다는 사실은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보도 때문에 알려졌다.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폼페이오가 불만을 표시했었는지를 강 장관에게 질문하자, 강 장관은 “맞다”라고 인정했다. 이는 이보다 앞서 나온 외교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른 것이었지만, 폼페이오의 전화를 직접 받은 사람이 발언한 것이기에 외교부의 발언보다 더 신뢰할 수밖에 없다. 만일 강 장관이 인정한대로 폼페이오 장관이 불만을 표시했다면, 이런 불만 표시와 앞서 언급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단어 선택”을 연결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남북정상회담 직후 국내 은행들에 직접 연락해 대북제재 준수를 요청한 사실이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알려졌다. 시기적으로는 이른바 평양 선언이라고 불리는 남북정상회담 직후에 이런 요청이 있었다고 하는데, 미국 재무부가 우리 금융당국을 거치지 않고 국내 금융회사와 직접 접촉해 의견을 전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일이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면, 대북문제에 있어 미국이 우리 정부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상황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이 그런 생각을 가진다 한들, 한반도 문제의 주체는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남북문제에 접근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한 부분이 있다. 비핵화라는 것이 미국만의 관심 사안인지, 아니면 우리의 관심사안인지 하는 부분이다.

만일 북한이 핵을 가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앞으로 우리는 핵을 가진 북한을 어떤 방식으로 상대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핵이 없는 우리의 처지에서, 핵을 가진 북한을 상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경제력으로 우리가 우위라는 점은 여기서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물리적 힘은 경제력의 우위를 압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핵을 가진 북한이 존재하는 한, 미국의 핵우산은 과거만큼의 위력을 가지기 힘들 것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그래서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미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주창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과 보조를 맞춰가면서 비핵화를 앞당기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즉, 현실적으로 미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위해 상호간의 신뢰구축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