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하늘이 하는 말

 

 

 

하늘이 떴다. 구름 활짝 피우고 비취빛 가득 머금은 채 높이 뜬 하늘. 하늘은 주기적으로 오늘처럼 가을을 몰고 온다. 가을이 되고서야 뜬 저 하늘을 나는 자주 잊고 살았다. 어쩌면 하늘이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하늘을 쳐다볼 겨를이 없었다는 말이 맞을 듯하다.

내달리는 하루는 하늘을 닫기에 충분하다. 눈 비비며 전철에 오르고, 버스를 내리고 운전을 하는 아침. 허겁지겁 점심을 먹고 시작하는 시끌벅적한 오후. 마감에 쫓기며 두리번거리는 저녁시간까지. 결국에 지친 신발을 머금고 돌아오는 늦은 밤. 그 어디에도 하늘은 없었던 것 같다. 오직 숨차게 달리는 나와 일과 몇 잔 커피와 쫓기는 시간이 있을 뿐.

“언니야, 너무 바쁘게 살지 마. 우리 고모님 칠순 다 되어 외국여행 처음 가는 날, 인천공항에서 쓰러지셨어. 그래서 여행도 못가고 입원하셨다니까. 제발 여유 있게 건강 생각하며 살아”

왜 먼 이국에서는 하늘이 더 쉽게 보였을까. 지중해 에둘러 걸어오르던 리키안웨이. 그 빽빽하던 나뭇잎 사이로 올려다 본 하늘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때 올려다 본 하늘은 엄마와 대청마루에 누워서 올려다본 감나무 이파리 흔들어대던 바로 그 하늘이었다. 낯선 곳에서의 내 불안을 잠시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그런 파란색이었다. 어느 곳에서건 별반 다르지 않은 하늘색. 그것은 내가 있는 곳이 외국이든 우리나라든 또 다른 도시든. 마치 오래 묵은 고향의 이정표처럼 푸근하게 품어주는 듯도 했다.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말이다.

“야야, 요새 많이 힘들제? 바쁘고 힘들수록 하늘 한 번 보거레이. 하늘에는 내 마음도 있고 느그 엄마도 있고 아부지도 있는 기라. 암만 힘들어도 하늘 한 번 쳐다보고 한 숨 한 번 푹 푹, 쉬고 나면 다 씻겨 나가는 기라”

오래전에 들었던 할머니의 그 말이 요즘 들어 문득문득 떠오르는 건 왜일까. 혹시 하늘이 몰고 온 가을을 타는지도 모를 일이다. 단풍 얼룩덜룩 들어가는 이 가을, 굳이 나이 더불어 밀려오는 갖가지 내 감정을 꽁꽁 닫아 가두거나 밀어낼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얼룩덜룩 색깔 다르게 변덕부리는 그 마음 또한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임에 분명한 것이기에 함께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싶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단풍 더불어 가을을 맞고 보내듯이 말이다.

바쁜 일상의 휘둘려 닫아버린 하늘을 이제는 열어 놓고 싶다. 좁은 창문 틈새로도 얼비쳐 들어오는 저 틈새 하늘마저도 나는 밀어낼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건 대단한 어떤 여유가 아니라 한 번씩 하늘 올려다보는 그런 여유를 열어놓고 싶다는 것이다. 코스모스 허리 휘도록 춤을 추는 길을 따라 낯선 핑크뮬리가 강물처럼 흘러도 굳이 밀어내지 않는 하늘. 연꽃 다 떨어내고 몇 가닥 연 줄기 휘어져 내리는 그 틈바구니조차도 열어젖히는 하늘.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맞게 음영 조절할 줄 아는 그런 하늘. 그 하늘이 하는 말, ‘여유를 가지라’는 그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