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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터진목의 숨비소리

터진목의 숨비소리

                          /박현솔

바다가 유채꽃 길을 터주는 성산포

먼 바다 위의 태왁들은 넘실대는 파도 아래

잃어버린 길 하나를 찾은 듯 둥그렇게 떠오른다

젊은 해녀가 며칠 전 엄마가 된 몸을 바다에 담그자

아직 뼈가 맞춰지지 않은 몸속으로 찬 기운이 몰려오고

숨비소리도 멀리 나아가지 못하고 허공을 맴돈다

사나흘 전부터 마을에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집들이 불에 타면서 울음이 줄을 잇고 있다

마을 남자들의 대부분이 어딘가로 끌려가고

갓난아기를 안아보자마자 남편도 어딘가로 끌려갔다

거센 물살 너머로 바다 속을 들여다보는 그녀

해초에 발이 걸리거나 돌 틈 사이로 고꾸라지면

어둠 쪽으로 기울었던 불안감이 요동을 친다

살아야 한다고 어린 자식들을 지켜야 한다던

남편의 모습이 해초 사이로 어른거린다

갑자기 밀어닥친 사나운 이념의 소용돌이는

아직 활보 중이고 서둘러 소멸하기에는 글렀다

오늘 누비고 있는 이 검은 바다의 시간이

어제 누군가가 간절히 원했던 시간이었음을

말해주는 고동소리 나는 숨비소리, 숨비소리

 

 

숨비소리는 잠수하던 해녀가 바다 위에 떠올라 참던 숨을 휘파람 같이 내쉬는 소리다. 해녀의 그 순간에 토하는 숨이란 얼마나 귀한 것인가. 우리는 이렇듯 한 번의 숨으로 인해 살기도하고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 몸이 살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러한 의지와 상관없이 죽어간 사람들이 있다. 시대에 가려져 시대 속에 숨겨져 있던, 아니 숨겨야만 했던 사람들. 그 원통함이 이 시에는 고스란히 들어있다. 사나흘 전부터 마을에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집들이 불타고 대부분의 마을 남자들이 어디론가 끌려가던, 그리고 갓난아기를 안아보자마자 남편도 끌려갔던, 어디 이러한 참극뿐이랴. 이제는 드러내놓고 말할 수 있는 제주 4·3 사건, 그 비극은 이렇듯 시 한 편만으로도 우리를 하염없이 슬픔에 젖게 하는 것이니, 그 일을 겪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심정이란 어떻겠는가. 내 민족 내 핏줄, 우리는 부디 우리가 사는 오늘이 어제 누군가가 간절히 원했던 시간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서정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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