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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봉돈(烽墩) 下

 

 

 

수원화성에는 50여 개의 성곽시설이 있으며 이중 중요시설에는 별도의 담장이 설치되어있다.

4대문 육축 위 누각(장수의 지휘소)과 정조가 특별히 사랑한 동북각루(방화수류정) 및 봉돈 등이 그 대상이다. 만약 봉돈이 전쟁 이전에 첩자로 인해 파괴된다면 무방비 상태에서 적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요한 시설로 분류되었다고 본다.

조심태가 봉돈의 축조를 처음 건의한 것은 1796년 1월이고 6월에 완성되었다. 공사 기간을 2개월로 보면 위치 선정과 설계에 약 3개월이 소요된 것이다. 봉돈의 건설을 건의한 사람은 조심태이지만, 당시 현장에서 실무를 담당한 책임자는 도청 이유경이니까 그를 설계자로 볼 수 있다.

배치평면에서 봉돈은 절반 이상이 성곽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돌출된 외벽에 5개의 화두(火竇)가 있고 내부는 마당과 기계실 및 온돌방이 있으며 그사이에는 작은 홍예문이 있다. 온돌방은 남쪽에 위치하고 기계실은 햇빛과 관계없는 북쪽에 있다. 홍예문은 이곳을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출입구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어 마치 또 하나의 성(城)이라 할 수 있다. 한글본 정리의궤에서는 봉돈은 정교하고 견고하여 다른 대(臺)보다 더 많은 공력을 들여 중국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라고 극찬하고 있다.

봉돈은 갑오경장(1894)으로 봉수제도가 폐지되어 관리보수 없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퇴락되고 소멸되었다. 복원은 크게 2단계를 거쳤는데 1단계는 1971년으로 남아있는 봉돈을 해체하지 않은 상태에서 화두와 내부시설을 제외한 범위였다. 2단계는 수원성복원정화사업으로 1978~1979년 화두(火竇)와 내부의 온돌방 및 기계실 그리고 벽체와 여장 등이 포함되어 전체복원이 이루어진다.

세상에 완벽한 복원은 있을 수 없듯이 복원된 봉돈에서도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펴보자. 복원에 대한 문제제기보다는 이런 자료들이 모여 추후 해체보수를 할 경우 진정성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자료로는 창건시기에 만든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가 있고, 대한제국시기부터 해방 후 미군이 남긴 사진들이 있다.

평면 크기를 살펴보자, 봉돈 외부가 성곽에서 나간 길이는 화성성역의궤 18척(5.54m), 정리의궤 24척(7.4m) 복원은 약 22척(6.74m)으로 각기 차이를 보인다.

총안(銃眼)은 여장(女墻, 성곽의 낮은 담)에 18개가 설치되어 의궤의 기록과 같으나 설치방법에 문제가 보인다. 보통은 원총안 2개와 근총안 1개를 한 묶음으로 하여 품(品)자 뒤집어진 형태로 상부가 원총안이고 하부가 근총안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외부 형태는 맞으나 내부는 단 차이 없이 만들어져 원형과 다르다.

포혈(砲穴, 성체에 근총안처럼 설치된 총안이며 두께가 여장의 4배이고 서장대의 서쪽 성벽에도 있다)은 21개 설치되어 있다. 총독부 유리건판 사진에도 21개로 추정되고 1971년 복원 당시 포혈은 남아있었기 때문에 개수의 문제는 없다고 본다. 다만, 화성성역의궤에서 건축도는 21개로 보이나 기록은 18개로 되어있어 의문점이 남는다.

화두(火竇)를 높이기 위해 단(段)을 설치했는데 그 개수가 관련 자료에 모두 다르게 나와 있다. 화성성역의궤에서 건축도와 기록 모두 3단으로 나와 있다. 정리의궤에서 기록은 5단이고 건축도는 4단까지 보이고 그 하부가 안 보여 5단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유리건판 사진에는 4단으로 보이고 복원된 현장도 4단으로 되어있다.

이외 여러 부분에서도 각기 다른 점들이 발견된다. 1970년대보다 현재는 더 많은 자료들이 발견되어 원형을 좀 더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가 모두 다 진정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알았다. 의궤는 공사가 끝나고 만들기 때문에 비교적 정확하지만, 조사과정과 편찬과정에서 오류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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