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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양심]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미국 스텐포드대학 심리학과 필립 짐바르도 교수(Philip Zimbardo, 1933~)는 2007년 ‘루시퍼 이펙트(Lucifer Effect)’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는 그가 1971년에 주도했던 한 실험의 과정들을 상세하게 서술하면서, 인간에게서 표출되는 폭력과 잔인성의 원인과 근거를 사회심리 현상의 관점에서 규명하려 했다. 그의 실험은 ‘익스페리먼트’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주로 대학생들이 참여한 이 실험은 스텐포드대학의 지하에 임시로 만든 감옥에서 진행되었는데, 가짜 교도관과 가짜 죄수를 임의로 나누어 역할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초 예정했던 2주간의 실험일정을 6일도 못 가서 중단했다한다. 그 이유는 실험 첫째날부터 가짜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주어진 상황에 몰입되어 진짜처럼 행동했으며, 특히 교도관 역을 맡은 학생들의 잔혹성이 날이 갈수록 거칠어져서 실험후유증 등 여러 가지 우려로 멈추게 되었다. 이 실험을 통해서 짐바르도 교수는 폭행과 잔인성을 행하는 자들을 ‘썩은 사과’로, 잔혹성을 유발시키는 상황과 시스템을 ‘썩은 상자’로 비유하며 인간폭력성의 근본원인을 ‘썩은 상자’에 비중을 두었다.

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 도처에서 집단학살과 만행들이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특정 소수의 권력유지와 이해관계로 다수집단이 그것을 대행하는 구조가 대부분이었다. 중세유럽에서는 ‘마녀사냥’이라는 명분으로 여러 왕조에서는 ‘역모’라는 누명으로 폭력대행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시켰다. 때문에 집단학살의 공동집행자들은 아무런 생각과 죄의식도 없이, 자신도 그동안에 몰랐던 인간 내면의 잔혹성을 발견하며 적대행위를 하게 된다.

집단가해자의 잔혹행위로 그 피해자들은 일생동안 그 트라우마 속에서 몸서리치며 고통의 세월을 보낼 뿐만 아니라, 분노와 적개심으로 몸과 마음에 독성으로 가득 채우며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지난 세기의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을 통해서 그리고 전쟁 후에는 공산주의자 색출과정의 대행자들을 통해 무고한 양민들의 통고잔상(痛苦殘像)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덱거와 야스퍼스의 제자였던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독일계 유대인 정치이론가로 나치를 피해서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했다. 그녀의 역작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에서는 사회적 악과 폭력의 본질에 접근하며 전체주의와 방향성을 잃은 대중들을 경고하고 있다. 그녀의 저술 중에서 필자는 출간 직후부터 논란이 많았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에 각별히 주목한다. 이 책은 독일 나치의 1급 전범자로 예루살렘에 도피 중이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체포되면서 열리게 된 전범재판에 아렌트가 ‘뉴요커’잡지의 특파원으로 참석한 것이 저술의 동기가 됐다.

재판의 전 과정을 취재하며 아이히만의 진술과정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범죄주시관점을 알린 책으로도 유명하다.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학살한 당사자가 아님을 시종일관 주장하며, 자신은 단지 행정업무에 충실한 공무원이자 가족을 부양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진술에서 실제로 그는 평범한 사람임을 알았고, 거대한 시스템의 부품과 같은 존재였음을 인정했다. 반면에 그녀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경고, 즉 일반 대중들의 ‘생각없이’ 악행에 동참하는 ‘무사유(無思惟)’를 죄로 규정한다.

아이히만을 통한 ‘악의 평범성’ 개념도출로 동료 유대인들로부터의 논란과 질타를 받았지만 한나 아렌트의 전체적 통찰과 주시관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크다. 모든 시대의 큰 사건과 불행들은 결국 군중의 ‘생각없음’으로 귀결된 것은 아닌가? 그동안 악행에 동참한 자들은 ‘썩은 사과상자’ 속에 무뇌아(無腦兒)로 담겨져 함께 썩어버린 것은 아닐까? 필자는 아렌트의 전체적 주시력을 주시하며 오늘날 한국사회의 두 갈래의 행렬들을 또한 주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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