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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사랑의 조건

 

어느 마을에 늙은 홀아비와 아들과 며느리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아침저녁 끼니도 해결하기 어려운 형편인데 늙으신 아버지의 환갑이 다가왔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방법이 없자 궁리 끝에 며느리는 길게 자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팔기로 결심했다.

그 시절에 여인이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고 부모님께 받은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은 부모와의 연을 끊는 행위로 간주되는 때였다. 그렇지만 홀로 되신 시아버지의 회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 돈으로 쌀을 사고 반찬을 마련해 정성껏 환갑상을 마련했다.

특별히 사람을 초대해서 성대한 회갑연을 해 드리지 못하는 죄스러움에 초라하게 차린 환갑상을 받아야 하는 홀아버지를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아들은 방바닥을 두드리며 장단을 치고 며느리는 잘라낸 머리를 감추기 위해 보자기를 쓰고 춤을 추었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늙은 아버지는 잔칫상을 앞에 놓고 눈물을 흘렸다.

마침 미행을 나간 성종은 이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고 백면서생인 아들에게 다음번 과거에 꼭 응시하도록 간곡히 당부했다. 그 이듬해 별시를 치른다는 방이 붙었고 과장에 걸린 시제는 다름 아닌 喪家 僧舞 老人哭 이었다. 상갓집에서 상주는 노래하고 여승은 춤을 추며 노인은 곡을 한다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모두 갈피를 잡지 못했으나 백면서생은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과거에 급제했다. 그가 이효달 이었다.

하버드대학교는 인생성장보고서라고 부제가 붙은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 책에 일곱 가지 행복의 조건을 꼽았는데 그 첫째가 행복한 가족관계라고 한다.

喪家 僧舞 老人哭 이라는 상상이 가지 않는 장면은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이 가족이라는 점에 착안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들은 가족애로 상황에 무너지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애달픈 효도이고 눈물겨운 우리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한 가족관계는 행복한 결혼을 통해 시작된다. 경제성장과 그로 인해 주어지는 소득, 즉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는 자살과 폭력 등을 저지르는 생명 경시 풍조에 빠진다. 결혼을 앞둔 남녀가 양가 상견례를 앞두고 신혼집 장만 등의 문제로 다투다 예비신부를 살해 후 시신을 훼손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주 자신의 집에서 신혼집과 관련한 문제로 다투다 예비신부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일생을 함께 해 줄 것을 바라며 가슴 설레는 프로포즈를 하던 사람과 사소한 말다툼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사람은 분명 동일인이었다. 한 사람의 서로 다른 행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1세기에서 요구되는 사랑의 조건도 화려한 꽃장식이나 보석이 대신해 주지 않는다. 성대한 결혼식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행복의 파랑새도 신도시의 고층 아파트만 찾아 둥지를 짓지 않는다.

굳이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도 신혼집이 어떤 곳이라도 신혼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난한 시작에서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행복한 가정을 가꾸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행복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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