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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이 마당에 특별재판부라니

 

지난달 30일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징용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3년 8개월 만에 원고승소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이들은 1995년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했고 1999년 패소하자 2005년 국내에서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 법원에서는 패소했으나 2012년 대법원이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일본 기업의 재상고로 다시 대법원으로 넘어갔지만 이른바 ‘사법농단’에 의하여 지금까지 판결이 지연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2012년 판결에서 소멸시효를 3년이라 했으므로 2015년까지 재판을 지연시켜 수만 건으로 예상되는 추가소송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2013년 김기춘 비서실장이 삼청동 공관에서 차한성 행정처장과 윤병세 외교부장관을 만나 판결을 늦춰달라고 요구했다. 대법원은 반대급부로 상고법원 설치와 판사들의 해외파견을 늘려달라고 했다. 그밖에도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법조계를 사찰하여 외압을 가하고, 내부의 비판적 판사들은 주요 보직에서 배제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것이 사건의 내용이다. 수사가 진행중이고 핵심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차장이 구속되었지만 아직 전모가 밝혀진 건 아니다.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사법농단 방식으로 사법농단 사건을 해결할 수 없어

법원에서는 3번이나 자체조사를 했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이 결론을 유보시켰다. 이 와중에 지난달 25일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특별재판부 도입에 합의하였다. 이 사건을 맡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7개부 중 5개부 재판장이 조사대상이거나 피해자라는 점 때문에 현 사법부를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수사과정에서 압수수색영장이 제대로 발부되지 않았다는 점도 내세운다. 법률안에 따르면 대한변협, 판사회의가 추천하는 각 3인, 학식과 덕망 있는 시민 3인 등 9인의 ‘특별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를 두고, 위원회가 현직 판사 중에서 2배수로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3명을 임명하여 구성한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에 각각 1심과 2심재판부를 구성하고 최종심은 대법원이 맡는다. 우리는 이런 특별재판부의 역사가 있다. 해방 후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해 1948년 헌법에 근거하여 그해 9월에 제정된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그것이다. 특별검찰부 관장은 대검찰청장 권승렬이, 특별재판부 부장은 대법원장 김병로가 맡았다. 그러나 친일세력과 이승만 대통령의 방해로 특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1949년 10월 해체되었다. 그러다가 5·16 직후 국가재건비상조치법에 근거하여 반국가·반민족행위, 반혁명행위 등을 처리하기 위해 혁명검찰부와 혁명재판소를 구성하여 9개월여 활동한 바 있다.



해결은 법원에 맡기되 간섭이 아닌 국민의 감시가 중요

지금이 그런 때인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고 아직 사법부가 구성되지도 않았던 때에, 지난 시절을 청산하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이 팽배했던 때와 지금이 같은 때인가? 검찰은 “민사 재판에 청와대가 개입해 행정부가 사법부의 고유 권한을 침해한 중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현 정부 출범 때부터 논의되던 검찰개혁은 실종된 것은 아닐까? 혹시 검찰이 검찰개혁을 흐리기 위해 이런 분위기를 연출한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아무튼 특별재판부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법원은 사건을 무작위로 배당한다. 담당판사가 당사자거나 관련자여서 공정한 재판이 우려되면 재판에서 배제시키는 제척·기피·회피제도를 활용한다. 담당법원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그럼에도 특별재판부를 추진하는 것은 법원 밖에서 이미 유죄라는 결론을 내려놓은 것이며, 법관들에 대한 엄청난 압박이 될 것이다. 물론 무죄 판단을 내릴 경우에 말이다. 그리스신화에서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저울과 칼을 든 채 왜 눈을 가리고 있겠는가? 사건의 핵심은 공정한 재판을 위해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는 일이다. 이미 법관의 독립성이 훼손될 대로 훼손된 상태에서, 사법농단 사건을 해결하려고 사법농단 방식을 쓰는 것은 모순이다. 안타깝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법원에 맡기되, 국민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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