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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양심]‘택시운전사’의 유턴하는 양심처럼

 

지난번 기고에서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거론하며 ‘썩은 사과상자 속에 무뇌아(無腦兒)’처럼 담겨져 함께 썩어버리는 대중들의 ‘생각없음’과 전체주의의 경고로 글을 마무리했으나 아쉬움이 있었다. 본래 의도에서는 문장을 ‘희망의 예시’로 마무리하려 했으나 제약된 지면 속에서 효과적인 문단 배분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그 ‘희망의 예시’는 영화의 한 장면으로 한동안 필자의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반짝거렸다.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는 지난해 개봉 1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1천만 관객을 훌쩍 넘긴 대표흥행작이었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적어도 1천만명 인구 이상에게 전달된 스토리가 바로 1980년 광주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에 두 명의 실존인물들의 인연으로 시작된 내용이므로 그 끼친 영향과 파장이 컸을 것이다.

한 사람은 독일인 기자로 독일방송국 ARD 소속 위르겐 힌츠페터(Jurgen Hinzpeter, 1937~2016)이며, 또 한 사람은 리무진 몇 대로 운수업을 하던 김사복이라는 인물로 실제 광주에 힌츠페터를 안내한 장본인이다.

영화의 발단은 택시를 탄 두 사람의 ‘거리의 의미 차이’에서 시작된다. 서울에서 광주까지의 300㎞가 독일기자에게는 빨리 도착해야 할 곳이며, 도착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상치 않은 사건을 예감하고 카메라에 기록할 ‘가상공간’이 이미 설정됐으며 그곳에 생각이 머물러있다. 반면 택시운전사는 밀린 집세 10만원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차에, 우연히 광주까지 왕복 예약해 10만원을 벌게 됐다며 자랑하는 동료운전사의 손님을 가로채면서 시작된 ‘거리’다.

당초 택시기사에게는 10만원에서 왕복 600㎞가 환산된 기름값을 뺀 남은 차액이 목적일 뿐이었다. 독일기자에게는 목적지에서 벌어진 사건이 자신의 예측보다 훨씬 심각해 고통과 절망감을 현장에서 공감하며, 녹화영상을 외신에 보도해야 할 사명과 목적이 더욱 뚜렷해지면서도 그의 ‘거리’와 ‘공간’의 의미에는 변화가 없다. 택시운전사는 300㎞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부터 예기치 못한 사건과 변화의 연속이다.

심지어 전혀 설정되지 않은 1박 2일의 공간에 머물기까지 한다. 처음엔 광주라는 외부와 차단된 공간 속에 그도 머물게 됐지만, 그의 생각과 내면세계는 여전히 300㎞의 거리가 유지되는 바깥 인물이었다. 속히 위험한 곳으로부터 빠져나가려는 노력만이 전부였다. 점차 광주시민들이 나눠주는 주먹밥의 ‘맛의 공감’을 시작으로 하룻밤을 함께 보내며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과정을 치르면서 주인공은 격리공간 광주와의 거리가 좁혀지며 ‘고통의 공간’ 속의 내부자로 변화된다.

서울에 어린 딸이 혼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광주사람들의 위로와 배려를 거꾸로 받으면서 택시운전사는 손님을 두고 혼자 서울로 출발한다. 서울로 가는 300㎞는 이제 그에게 단순한 거리의 의미가 아니다. 그의 택시에는 처음에 함께 탑승한 손님은 사라졌지만, 없었던 광주라는 공간이 실리게 됐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한 번의 울컥함과 폭발로 정점에 이른다.

서울로 가는 도중에 딸에게 선물할 신발을 사고, 식당에서 국수 한 그릇과 주먹밥을 먹으면서 주인공은 울컥하게 된다. 벗어난 공간의 공감과 고통의 연민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택시를 운전하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80년에 유행했던 ‘제3한강교’를 따라 부르는 도중에 그는 울먹이다 폭발하게 된다. 그리고 핸들을 꺾고 유턴한다. 광주로 되돌아가는 중에 딸에게 이렇게 전화한다.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꼭 다시 데려와야 해”

광주로 되돌아간 택시에 실고 오고자 한 사람은 물론 독일인 기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 영화의 정점으로 보는 택시운전사의 유턴의 의미는 광주시민 모두를 실고 오고자 하는 뜻으로 그리고 구원자의 자기존재 자각의 대목으로까지 느껴졌다.

“비싼 등록금 내고 하라는 공부는 안 하는”이라며 혀를 차던 소시민 택시운전사의 이틀간 변화를 전개시킨 영화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에게도 썩지 않는 사과로 남을 수 있는 희망을 남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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