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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슬칼럼]자연의 노래와 잃어버린 ‘나’의 회복

 

“허나 모든 것이 변하였다. 한때는 호머가 말안장에 올라타고 내달렸건만 지금은 저 고귀한 말 타는 이 하나 없고 그곳엔 백조가 어둠이 깔리는 물 위를 떠돌 뿐.” W.B. 예이츠 「쿨 파크와 밸리리, 1931」

최근 주변에서 일어나는 섬뜩할 정도로 잔인한 사건들을 보면서 인간정신이 점점 황폐해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는 고도의 과학기술혁명 시대에 인간의 정신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통해 실재와 가상이 통합된 가상물리 시스템 구축이라는 거대한 산업화의 물결 앞에 인간은 점점 왜소해지고 무력해지는 것은 아닐까? 인간 정신과 문명화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몇 년 전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시인 W.B. 예이츠(Yeats)의 발자취를 따라 아일랜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예이츠의 후원자이자 아일랜드 연극부흥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귀족 그레고리 부인의 장원 쿨 파크를 찾았을 때 이미 해는 이울고 백조 몇 마리만이 어둠이 내린 호수 위를 떠돌고 있었다. 예이츠는 쿨 파크에 머무르며 시를 쓰기도 했고, 무엇보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 질서와 기품을 중시한 그레고리 부인의 귀족주의적 낭만성에 큰 감명을 받기도 했다. 예이츠는 「쿨 파크와 밸리리 탑, 1931」(“Coole and Ballylee, 1931”) 마지막 연에서 이러한 낭만주의적 미학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시인도 그레고리 부인도 늙어가니 모든 것은 변화할 것이고 이제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줄 이 없으니 그들이야말로 “마지막 낭만주의자들”(last romantics)라고 생각한다.

“허나 모든 것이 변하였다. 한때는 호머가 말안장에 올라타고 내달렸건만/ 지금은 저 고귀한 말 타는 이 하나 없고/ 그곳엔 백조가 어둠이 깔리는 물 위를 떠돌 뿐.” W.B. 예이츠 「쿨 파크와 밸리리, 1931」 일부.

물론 희랍적 낭만주의는 많은 것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말안장에 올라타 자연과 하나가 되었던 존엄한 시대를 떠올려보고 싶다. 낭만주의의 중요한 개념이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인식이고 그럴 때 인간은 질서와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가 쓰인 1931년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많은 분야에서 기술혁신이 이루어지고 있던 때였다.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인 이 시대에도 시인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탄식한다. 일찍이 19세기 초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1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이 겪게 될 정체성의 위기와 불행을 예고한 것을 상기해보면 문명화의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이 자연과 갖는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가를 알 수 있다.

인간은 상호결합의 욕구를 지닌 존재이다. 가공할만한 기술혁명의 속도 앞에서 타자와의 소통에 실패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은 엄청난 것이다. 그럴수록 그들은 더 깊은 자아의 공간으로 침잠하게 된다. 최근의 사건들이 피시방이라는 폐쇄된 디지털 공간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와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기계와의 대화가 타자와의 진정한 소통을 방해하고 차단하며, 그 결과는 끔찍한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자연과 하나가 되었던 호머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해도 우선 마음의 문을 열고 자아의 방으로부터 나와 타자·자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것이다. 바깥세상에는 나와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의 노래가 있다. 자연을 바라보면서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될 때 타자·자연과의 대화가 가능할 것이고 그때 비로소 잃어버린 ‘나’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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