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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 때마다 고운 단풍잎을 떨구는 나무는 모든 것을 땅으로 돌려주고 앙상한 몰골로 남아 겨울을 준비한다.

식물들이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월동준비를 한다. 예전에는 쌀 한 가마와 연탄 오백 장을 재어 놓으면 든든하다고 했지만 지금은 전화만 하면 배달해 주는 난방유나 도시가스가 있어 연료 걱정은 별로 안 하고 산다. 그러나 여자들에게 주어진 김장은 김장증후군이라는 말을 낳기도 하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 때도 겨울의 문턱이었다. 살얼음 같던 나날이 이어지던 시집살이의 시작이 된 때가 바로 첫눈이 올 무렵이었다.

한 번은 교대역에서 전철을 타야 하는데 역까지 택시를 탔다. 내가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걸 눈치채신 택시 기사님께서 지름길로 접어들었다. 네온이 빛나는 골목길에 빨간 불빛으로 무슨 장이니 모텔이니 하는 간판으로 가득한 골목을 빠져나오는 동안 문고리를 손으로 잡고 있었다. 얼마나 손에 힘을 주었던지 나중에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였다.

결혼을 하면서도 늦은 나이라 집안에서 놀림감이 되었다. 이제 급하니까 막차 탔다고 놀리기도 하고 막차를 보내면 택시가 온다는 농담으로 사또를 멋쩍게 만들기도 했다.

결혼 후에도 막차는 언제나 내 발목을 잡았다. 친정과 시댁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놀래도 모자랐고 극심한 혼란으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고 우울증으로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피하고 혼자 있을 때만 중얼거렸다.

아들을 낳고 백일쯤 지나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딴엔 중대한 결심을 했다. 아침마다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끝내고 청소에 빨래에 모든 일을 완벽에 가깝도록 했다. 그러다보면 또 기저귀를 갈고 점심을 차려야 하고 수시로 찾아오시는 시아버님 친구분들 안주 될 만한 것으로 술상을 보고 또 빨래를 하고 저녁을 하다보면 막차는 벌써 끊어졌다.

다음 날은 더 일찍부터 서둘렀다. 마당 물청소를 하고 화장실 벽을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닦고 마른걸레 질을 하고 장롱도 깨끗이 닦고 걸레 삶고 아이 목욕시키고 하면 손에 불이 날 정도로 부지런을 떨어도 막차는 이미 끊어진 뒤였거나 아니면 겨우 가물가물 멀어지는 꽁지를 보며 주저앉고 싶은 걸음으로 돌아왔다.

며칠을 두고 온 집안을 쓸고 닦고 반찬도 해 놓고 이불빨래까지 미리 했다. 어차피 안 살기로 마음먹었으면 뒤돌아보지 않고 그냥 나가면 될 일을 나는 내 꾀에 빠졌다.

내가 없어진 다음 내 생각을 하며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들고 말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빠져 막차를 놓치고 가출이라는 꿈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여자들끼리 하는 수다 중에 이 얘기를 했더니 가출하는 여자가 자세가 안 돼 있다고 타박이다. 적어도 막차가 아닌 첫차를 타야 하며 밤에 가출을 하게 되면 어차피 이판사판인데 택시 정도는 타야 하는 게 정석이지 하는 말을 보니 가출은 처음부터 싹수가 없었다고 핀잔이다.

그러면서 다음부터는 아예 섬에 가서 살라고 한다. 그러면 배가 안 떠서 백년해로 할 테니….

막차 때문인지 싹수 때문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밤 열한시가 넘도록 다니는 차들이 많아졌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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