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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잠

                            /지하선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잠의 문 살짝 열렸습니다

깜박, 눈 한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재바른 마파람이 한평생을 물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풋감처럼 떫은 날엔 욕심껏 쟁여 두었던 것들

자랑하며 우쭐거렸습니다

닿을 듯 잡힐 듯 감나무 우듬지 매달린 사랑 한 알까지도

내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붉게 농익은 노을이 어둠으로 떨어지던 날

그 모든 것들도 억겁 벼랑으로 스러져갔습니다



소중하다고 싸매두었던 화사한 봄날

이제야 꺼내 보니 조등에 걸린 허무

남가일몽이라 했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주 잠깐 들었다 깨어나는 꿈인가. 지내놓고 나면 세월은 참 무상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러한 속절없는 감정의 깊이를 심도 있게 알지 못한다. 풋감처럼 젊으면 젊을수록 나와는 거리가 있는 먼 이야기다. 나보다 먼저 살거나 살다 간 사람들의 한갓 푸념일 뿐이다. 시인은 이러한 소멸을 향해 가는 우리네 삶을 슬쩍 풋잠에 비유해 꺼내놓았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잠의 문이 열리면 재바른 마파람이 한평생을 물고 날아가 버린다는, 아둔하게도 저마다 욕심껏 쟁여놓은 것들을 자랑하며 잡힐 듯 감나무 우듬지에 매달린 사랑 한 알까지도 내 것이라고 우긴다는, 이렇듯 우리의 모든 눈을 가리고 마음을 가리는 화사한 봄날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을 조등에 걸린 허무라고만 하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너무나 소중하다. 그리하여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누구에게라도 베풀 줄 아는 그러한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다. /서정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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