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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몸속의 사원

몸속의 사원

/이화영

당신과의 인연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이 된 후

내 몸속에 사원이 생겼습니다

사원의 누각에 걸린 鐘에는 당신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가 바느질하듯 정으로 새긴 형상입니다

아직 아무에게도 누설하지 않았습니다

생이 비루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한동안 버려두었던

종 채를 찾아 누각에 올라갑니다

당신의 음성이 종소리 되어 울려 퍼져 나간 자리마다

우묵한 우물이 파였습니다

우물이 찰박찰박 깊어질 때

벌레와 몸을 기댄 풀잎이 고요를 젖히며 일어납니다

당신이 사원을 나와 천천히 뒤편의 숲으로 들어가

바위에 엎드려 태아처럼 웅크립니다

그런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몸은 신열이 올라

우물을 퍼 올려 마른 정수리에 끼얹습니다

당신이 내 태아인 듯 양수가 부풀어 오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영겁의 인연이라면 어느 전생에서는 내가 당신의

여식이거나 남편이기도 했을 겁니다

다가올 어느 사후에는 당신이 내 자식이기도 할 겁니다

그 사원은 내 자궁 안에 있습니다

사원과 몸을 바꾼 바람이 알려준 비밀입니다

 

 

 

 

애절하면서도 더없이 신비한 연가(戀歌)다. ‘몸속의 사원’이란 당신이 내 몸에 새긴 사랑의 모든 흔적이자, 상처이고, 황홀의 징표들이다. 시인은 이 징표들을 ‘종’(鐘)으로 압축하는데, 그것은 또한 종의 이미지가 상징하듯, ‘쇠’라는 결빙과 ‘소리’라는 유동의 경계다. 또한 ‘인연’의 두 속성인 행복과 통증의 이중성이기도 하다. 시인은 고백한다. “생이 비루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한동안 버려두었던/ 종 채를 찾아 누각에 올라갑니다”라고. 하지만 이 아득한 울음에도 당신의 목소리가 파낸 ‘우물’이 깊어 간다. 온몸을 휘감는 당신을 볼 때마다, 시인은 “당신이 내 태아인 듯 양수가 부풀어 오르는 소리를 듣는데”, 그것은 모든 전생을 통해 이어져 온 당신과 나의 영겁이 꽃처럼 터지는 순간들이다. 이 시가 애절한 이유는 당신과 나의 인연이 까마득한 시간 속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이며, 신비한 이유는 인연의 힘으로 당신과 내가 끝없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읽으며 나도 나를 관통했던 그 무수한 인연들을 생각한다. /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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