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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모과를 자르다

 

모과가 선물로 들어왔다. 모과를 식탁에 올려놓자 은은한 향기가 감돈다.

모과 향기만으로도 집안이 산뜻해지고 찌뿌둥하던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하다. 모과차를 만들려고 칼집을 내자 훅 향기가 쏟아진다. 모과를 반으로 가르니 씨앗들이 가득하다. 검고 탱글탱글한 씨앗이 한 줄로 나란히 하고 있다. 저 씨앗들 속에 혹독했던 지난 여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폭염에 가뭄까지 감내하기 힘든 여름이었다. 그 혹독함을 견디고 실하게 열매를 맺고 제 안 깊은 곳에 까맣게 씨앗을 품고 있는 모과가 대견하다.

농약을 주지 않아 벌레 먹었다는 지인의 말처럼 모과의 살 속에 벌레의 집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병충해 예방을 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과실이 거의 없다. 그나마 무 농약이라는 것을 위안 삼는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 농약이 좋지만 과수나무의 입장에서는 과히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무줄기 속을 파고드는 벌레부터 과수열매를 병들게 하는 탄저병까지 여러 종류의 병충해가 있지만 극심한 가뭄 탓인지 과수나방이 유난히 심했다고 한다.

그래도 모과는 커다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고 씨앗을 튼실하게 키웠다. 모과뿐이 아니다. 이맘쯤이면 식물들이 자신의 종족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시기다. 가으내 익힌 씨앗을 바람에 흘려보내기도 하고 어떤 씨앗은 사람이나 동물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며 종족 번식을 한다.

풀밭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니 도깨비 풀이며 이름 모를 풀씨가 옷 여기저기에 붙어있다. 풀씨를 떼어 도로 옆에 풀 섶에 던져 주었다. 풀 섶 어느 틈엔가 섞여 있다가 봄이 되면 뿌리를 내리고 자신을 지켜낼 것이다.

식물도 지신의 뿌리를 지켜내기 위해 바람을 이용하기도 하고 제 몸을 비틀어 씨앗을 털어내기도 하고 다른 매개체를 통해 널리 영역을 확보하는데 안간힘을 쓰는데 동물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어는 모천을 거슬러 와 산란을 한 후 최후를 맞이하고 가시고기 또한 바다에서 살다가 산란 시기가 되면 민물로 올라와 산란할 둥지를 만들고 암컷이 산란을 하면 수컷은 알이 부화하여 세상 밖으로 나갈 때까지 새끼를 지키다가 새끼들이 모두 무사히 둥지를 떠나면 만신창이가 되어 죽음을 맞이한다고 하니 종족유지를 위한 가시고기의 부성애는 과히 눈물겹다.

이렇게 자연이 순환되고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갈대의 빈 대궁 속에서 봄이면 새순이 돋고 누렇게 말라죽은 풀이 새순을 꺼내며 새 생명의 활기를 불어넣는 것처럼 쉼 없이 돌고 도는 관계 속에서 계절이 바뀌고 우리는 그 계절에 순응하면서 또 다른 계절을 기다린다.

가을들판이 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들판가득 푸른 것을 품고 태양을 맞이하고 바람을 불러들이고 비를 견뎌내며 봄부터 품었던 모든 것을 풍성하게 키워내 수확을 끝낸 빈들이 푹 꺼진 어머니의 젖무덤 같지만 그 빈들 또한 내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모과 속에 빽빽이 들어찬 씨앗들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씨앗을 만들고 때가되면 그 씨앗을 내보낸다. 좀 더 멀리 좀 더 나은 곳으로 뿌리내리기위해 온 힘을 다한다. 모과가 내지르는 향기 또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안간힘 일수도 있다. 곧 겨울이 몰아닥칠 것이다. 따끈한 모과차로 살 속으로 스미는 한기를 막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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