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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박제된 대부도 섬마을문화, ‘어울림문화’로 깨어나다

창생공간-문화공간 섬자리
안산 오이도와 방조제 연결후
해양생태계 파괴·외지인 투기바람
유기견·자살자 등 뒤치다꺼리
쇠락 마을주민들 트라우마까지

젊음이 6명 5년전 ‘섬자리’ 설립
‘삶의 문화’ 되살리기 사업 착수
청년·이주여성·청소년 함께 참여
내년 ‘대대손손 발전소’ 큰 성과

 

 

 

 

1980년대 산업화 바람이 불면서 농경지와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섬’에 주목했다. 육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섬까지 길을 놓고, 그 사이 바다를 메꿔 땅을 넓히자는 시도였다. 시화방조제는 그렇게 생겨났다.안산 대부도는 면사무소가 위치한 제법 큰 섬이었다. 1987년 안산 오이도와 대부도를 잇는 방조제 사업이 시작되면서 한때 주민들은 꿈에 부풀었다. 차로 도시에 쉽게 나갈 수 있고, 각종 문화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였다. 도시 사람들은 대부도의 땅을 이용해 다른 부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하지만 결론은 달랐다. 어업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도시로 나가면서 인구는 줄어들었고, 오히려 섬마을이 갖고 있던 문화는 사라지고 주민들의 결속력은 급격히 해체됐다.문화공간 섬자리(대표 박진)는 사라진 삶의 문화를 되찾아보자며 타지에서 온 젊은이 6명이 참여해 5년 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경기문화재단이 추진중인 창생공간 사업은 3개년으로 이어 진행된다. 첫해는 리서치 기간으로 공간 조성에 앞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의견을 모으며, 사업 방향을 설정하는 기간이다.

올해 리서치를 시작한 문화공간 섬자리는 대부도라는 ‘섬의 문화’를 화두로 삼아 주민들과 함께 공간조성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섬자리가 위치한 대부도 중앙로를 주민들은 ‘상동’(윗동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상동이란 지명은 어디에도 없다.

박진 대표는 “몇 년 전 우체국을 찾다가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상동에 가면 있다고 하는데, 인터넷에도 주소록에도 상동이란 지명이 없어 한참 헤맸다”며 “마을 주민들의 문화와 외부의 문화적 괴리감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경기문화재단에서 전시기획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박진 대표는 직장 관계로 대부도에 잠시 머물렀다. 그때 우체국을 찾아 상동을 헤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대부도가 칼국수 먹으로 가는 곳, 관광지와 펜션이 많은 동네가 아니라, 오랫동안 주민들이 삶을 이어온 곳이구나. 이곳은 그런데 왜 문화가 안보이지?”
 

 

 

 

 

섬마을에 둥지를 틀다

젊은 전시기획자가 가진 의문은 동료, 후배들과 섬 문화를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2015년 섬자리를 설립했다.

섬자리란 섬이 있던 곳, 섬이 잠들고 깨어나는 자리라는 의미를 담았다.

섬자리 단원들이 처음 시작한 일은 ‘구석구석 대부도 탐방’이었다. 상동을 중심으로 선사시대, 고려시대의 역사, 근현대 100년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의외로 많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안산시에 편입되면서 얻은 대부북동이란 이름 대신, 여전히 옛 이름 상동으로 불리는 이곳은 검을 관통하는 근대화와 산업화, 사람의 편의증진과 개선이라는 미명아래 재편성됐고 그 속도는 매우 빨랐다.

해양 생태계는 파괴되고 많은 바닷가 마을들이 쇠락했다. 투기꾼들이 사들인 땅에 섬사람은 소작농이 됐고, 사람들간에 갈등이 일어났다. 활기와 다양성을 잃어가며 정지된 공간이 됐다.

당시의 조사에서 박진 대표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소방서에 각종 신고상황을 보던 중 가장 많은 신고가 교통사고, 두 번째가 동물구조, 세 번째가 위치확인이라는 것이다.

“교통량을 보면 주민들의 차량은 전체 교통량의 5%도 안돼요. 나머지 95%가 외지인의 차량이고, 과속에 의한 사고입니다. 외지인이 과속으로 달리다가, 인도가 없는 도로를 따라 걷는 주민들이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도로를 보면 이곳은 관통도로 뿐이지 해안도로가 없어요. 바다가 안 보이는 도로죠. 즉 대부도는 관광지가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공간이라는 반증입니다.”

또 동물구조 상황을 보면 유기견 신고가 대부분인데, 99.9%가 외지인이 애완견을 버리고 가는 신고다. 위치확인은 자살 등에 대한 신고다.

“외지인이 이곳에 와 차를 세우고 연탄불을 피우거나 등으로 자살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그것을 발견해서 신고해야 하는 현지인의 트라우마도 적지 않았습니다.”

1년간 상동에 대한 추적은 ‘충격’이었다. 주민들은 도시인에게 삶의 기반도, 정신적 기반도 내어주며 살고 있었다.

 

 

 

 


섬마을 문화 리서치

섬자리 회원들은 이런 조사결과를 토대로 어떻게 주민들에게 대부도를 돌려 줄 수 있을까 고민을 시작했다.

섬자리 회원들은 대부분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들이다. 음악, 미술, 전시기획 등으로 인연을 맺은 관계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화적 접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선 이들은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에 주목했다. 거리에는 늘 중년 이상, 어르신들만 눈에 띄었다. 마을에 초·중·고등학교도 있는데, 청년들은 그럼 어디로 간 것일까.

젊은이들은 대부도에서 놀지 않았다. 한시간 버스를 타고 안산으로 가서 영화를 보던지, 커피나 술자리를 했다. 마을에서는 일을 마치고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정도가 소일이었다.

 

 

 

 

“선후배들을 만나는 스트레스, 작은 행동도 늘 누군가 아는 사람이 보고 있다는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섬자리는 그 젊은이들을 모아 ‘우리끼리 놀아보자’고 제안했다. 매주 목요일 7시에 그들을 모아 칵테일파티를 했다. 여러 재료를 섞어 칵테일을 만들고, 함께 나누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어 작은 공연도 했다.

이어 지난해는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이주여성이 그곳에 있었다. 이주여성과 일반 여성이 함께 모여 ‘자수’를 시작했다. 자수를 놓으면서 서로 대화하고, 소위 누가 누군지 알아가기 시작했다.

자수를 놓을 때 규칙이 하나 있다. 대부도에서 본 동물과 식물, 자연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어울림의 문화’를 젊은 층에게 확산할 수 있었다.

 

 

 

 

중고생들도 타깃이 됐다. PC방 하나 없는 마을에서 청소년들은 무엇을 할까라는 고민에 그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이 마을에 섞이는 일은 봉사활동을 위해 요양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고작이었다.

섬자리 회원들은 청소년들과 동네 경로당을 찾았다. “마을에서 태어나고 살고 있으면서도, 외지인이 입주해 있는 요양병원은 가봤지만 마을 어르신들이 있는 경로당은 처음”이었던 아이들이다.

“한 할아버지가 우리들에게 다음에 올 때 영정사진 좀 찍어주면 안되냐는 부탁을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아이들이 많은 생각을 했는가 봐요. 몇 달 후에 자발적으로 팀을 꾸려 사진기를 들고 경로당을 찾았어요. 우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 거죠.”
 

 

 

 

 

주민들이 만드는 문화공간

지난 3년간의 활동을 바탕으로 섬자리는 크게 세 부류의 커뮤니티를 갖출 수 있었다. 청소년, 청년, 이주여성이 그 대상이다.

이들을 주축으로 섬자리는 내년에 ‘대대손손 발전소’라는 문화공간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공간에는 오픈치킨과 마을방송국이 들어선다.

박진 대표는 내년에 이주여성들이 주축이 돼 오픈치킨을 만들 생각이라고 말한다. 이주여성들이 참여해 각각 모국의 음식을 만들고, 판매까지 하는 공간이다. 이 과정에서 이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문화를 교류하면서 ‘섬마을의 문화’를 이어가는 기회를 만들 계획이다.

또 청소년, 청년 등이 참여하는 마을방송국도 설립한다는 구상이다. 안산시와 대부도 마을소식을 주민들에게 전하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마을에 알리는 매개로 방송국을 기획했다. 방송은 청년들이 주축이 돼 진행할 예정이다. 마을에 대한 기록도 그 과정에서 함께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다.

인근 바닷가에 물때 시계공원도 구상하고 있다. 밀물 썰물 시간을 의미하는 ‘물때 시간’은 20여 년 전까지 대부분 주민이 어업에 종사했던 때 가장 중요한 시간표였지만, 지금은 대부도에서 의미를 잃은 시간표다.

“섬자리 회원들도 외지인이에요. 다만 대부도가 좋아서 온 사람들이죠. 결국 섬을 지키고, 섬의 문화를 이어가는 것은 이곳 주민이어야 합니다. 그 활동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내년의 목표입니다.”

1년차 리서치를 마친 박진 대표의 각오다./안직수기자 js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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