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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아귀(餓鬼)

 

어느 자리에서나 잘 먹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잘 먹는 선을 넘어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맛있는 메뉴에 꽂히면 마치 굶주린 사자처럼 폭풍흡입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아귀처럼 먹는다고 놀림조로 말하는데 아귀란 문자 그대로 굶어 죽은 귀신이다.

그냥 귀신도 아니고 굶어 죽은 귀신이니 얼마나 먹을 것에 포한이 졌을지 상상이 간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는 물론 누구 쳐다보며 남을 배려하고 말고 할 마음은 전혀 없고 오직 밥알 하나라도 더 넣어야 하겠다는 기세로 음식을 퍼 넣느라 여념이 없다.

이 아귀는 살아 있을 때 굶주리다 배가 고파 죽은 귀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섣부른 선입견에 불과했다. 글자를 읽고 얼핏 사전적의미로 해석을 하면 그렇지만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자기밖에 모르고 남에게 물 한 모금 줄 줄도 모르고 식탐이 워낙 커서 무슨 음식이든 혼자만 배부르게 먹다 죽은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아귀가 되어 떠돈다고 한다.

아귀의 형상은 대충 이렇다. 입은 커서 머리의 반을 차지하는데 비해 목은 가늘고 길게 생겼다고 한다. 거기에 배는 어찌나 불룩하던지 산달이 돌아오는 임산부처럼 보인다고 한다. 커다란 입으로 음식을 잔뜩 물고 미처 씹지도 못하고 겨우 씹어 삼키려고 욕심을 부려도 가느다란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목도 가늘지만 식도가 빨대처럼 가늘어 밥알 하나도 겨우 넘어가나 싶으면 걸리기 일쑤라 남산만 한 뱃고래는 늘 허기에 시달려야 했고 그럴수록 채워지지 않는 식탐은 늘어만 갔고 다시 허기를 불러오는 악순환에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아침에 알람이 두 번을 울리더니 저 혼자 입을 다물었다.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몇 군데 연락할 일이 있어 핸드폰을 열었는데 화면이 어둡고 보이지 않더니 이내 캄캄해진다. 다시 부팅을 하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Galaxy 어쩌구 하는 글자를 잠깐 보여주는 것으로 더 이상 대꾸를 거부한다.

부지런히 집으로 와서 충전기를 꽂고 기다려도 반응이 없다. 대리점으로 가서 테스트를 하니 충전기 헤드는 이상이 없고 연결 잭에 이상이 있다면서 잭을 갈아준다. 말 못하는 핸드폰은 충전기에 꽂혀만 있었을 뿐 배터리는 굶주리다 그대로 죽고 말았다.

친절하기 그지없는 미모의 여사장은 비용은 무료라고 하며 웃는 얼굴로 향 좋은 커피를 내린다. 커피 향이 퍼지면서 나의 긴장은 해제되고 진열된 핸드폰 케이스로 눈이 간다. 애석하게도 내 폰은 구모델이라 하루만 기다리면 내일 맞춤으로 준비한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하마터면 굶어죽어 아귀가 될 뻔했던 내 폰에게 예쁜 새 옷을 선물하기로 하고 하루만 기다리라는 말로 달래니 금새 착한 핸드폰으로 돌아온다. 밝은 얼굴로 영상도 잘 보이고 수발신은 일도 아니고 문자 전송도 카톡도 척척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

그러면 그렇지! 그동안 콘센트에 불이 들어온 것만 보고 어련히 충전이 되고 있으려니 하고 무관심하게 있다가 애먼 핸드폰을 아귀로 몰 뻔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무관심으로 인한 오해는 또 얼마나 많았을지 돌아보게 한다. 지나친 관심도 상대를 곤혹스럽게 하지만 무관심이 빚는 오해는 관계를 단절하기도 하는 또 하나의 칼이 될 수도 있다는 작은 진실을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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