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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맑은 날도 궂은 날도 다 지나간다

 

 

우리 삶은 하루하루 스쳐 지나는 바람결 같다. ‘스쳐간다’는 말 그대로, 좋은 것과 나쁜 것,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등, 모든 일들은 우리들의 인생에 잠시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과 기분 역시 살아오면서 계속 끊임없이 변화되어 왔다.

우리는 보통 두 가지 사실에 대해 실망하곤 한다. 기쁨을 경험하는 순간,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법은 없다. 고통을 겪게 될 때, 당장 그것이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것 또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하지만 인생은 늘 희망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불행은 자연스런 흐름에 저항할 때 생기는 거친 파도이다. 현재의 한 순간은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고 그 자리는 계속되는 또 다른 순간들로 메워진다. 어떠한 고통이나 불쾌한 상황 역시 자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에 불과하다. 이러한 인식을 마음에 새겨두면, 역경에 직면한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어느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이 하도 가난하여 우유급식 값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담임선생님이 돈 가져오라며 집으로 돌려보내서 어머니에게 울면서 돈 달라고 떼를 썼단다. 어머니는 없다고 하였고, 어린 아들은 “어디 가서 꿔서라도 돈 줘!” 라고 했다고 한다. 장성한 지금 생각해보니 돈을 못 주었던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더 찢어지셨을까? 라며 이제는 돌아가셔서 안 계시는 어머니를 애통해 했다. 우리 어린 시절엔 그렇게 가난했다.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본래 이 말은 유대경전 주석서인 ‘미드라쉬(Midrash)’의 ‘다윗왕의 반지’에서 나왔다. 다윗왕이 어느 날 궁중의 세공인을 불러 명했다.

“날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거기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결코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으라.”

이에 세공인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지만, 정작 거기에 새길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 끝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때 솔로몬이 일러준 글귀인즉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승리에 오만해지지 않기 위해 다윗왕이 자신의 반지에 새겨 넣고 몸에 지녔다. 결국 권력도 명예도 부도 사랑도, 실패와 치욕과 가난과 증오도 모두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렇게 아무리 힘들고 지친 일도 시간이 흐르면 지나가기 마련이다. 세월이 약이란 말이 있듯이 지나고 보면 그리움에 사무치기도 한다.

얼마 전 첫눈이 내리고 부쩍 추워졌다. 이때 쯤 주부들은 김장도 하고 겨울을 준비하게 된다. 나도 평소 같았으면 벌써 김장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이사를 하게 되어 새집에 가서 김장을 하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참으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 인생인가 보다. 예정보다 건설사 측의 사용승인이 지연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집이 아닌 숙박시설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냥 여행 온 것으로 생각하자며 마음을 비웠다. 다행히 입주를 하게 되었다. 옷이나 컴퓨터가 없어서 불편했지만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 지낸 것이다.

“동안거에 들어있던 먼 산이며 강물이/봄물을 퍼 올리며 푸른 입김 내뿜을 때/세상을 찾으러 떠난 내 마음 속 탁발승//살과 뼈 피가 도는 목숨 마침내 흙이 되듯/한순간 살아있는 미물들을 바라보면/그윽이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리고 싶다//고된 삶의 마디마다 별빛 같은 노모의 말씀/‘궂은 날도 맑은 날도 다 지나간다’ 다독일 때/눈부처, 눈물꽃 반짝 세상이 따스한 순간”

- 진순분, ‘따스한 순간’ 전문

궂은 날도 맑은 날도 다 지나간다는 어머니 말씀처럼, 우리가 겪는 것은 모두가 한때일 뿐,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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