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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뇌물의 두 얼굴

 

1801년 신유박해 때였다. 땟국이 줄줄 흐르는 거렁뱅이 소년이 어린 누이의 손을 잡고 동냥을 해서 모은 돈을 들고 망나니를 찾아와 다짜고짜로 손에 꼭 쥐고 있던 엽전을 내밀었다.

“며칠 있으면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을 당하는데 그때 우리 엄마도 끌려가서 죽는다고 해요. 그런데 칼이 안 들어 한 번에 목이 떨어지지 않아 몇 차례나 목을 쳐야 하고 그러면 우리 엄마가 마지막까지 너무 아프니까 지금부터 열심히 칼을 갈아주세요. 단칼에 우리 엄마 목이 떨어지게 해 주세요.”

울면서 하는 말이지만 또랑또랑한 말소리가 망나니가 듣기에도 너무 기가 막히고 어린것들이 하도 가엾어서 그러마 하고 약속을 했다.

처형장에서 여자의 목을 칠 차례가 되자 며칠 전 자신을 찾아왔던 거지소년의 얼굴이 떠올라 주변을 돌아보니 그 소년이 누이의 손을 잡고 맨 앞에 서 있었다. 힘껏 여인의 목을 내리쳤다. 아무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여인의 목은 이슬방울보다 더 가볍게 땅으로 떨어졌다.

얼마 전 보이스피싱에 주의하라는 말을 하다 전화뿐만 아니라 메일도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며 헤어진 날이었다. 정말 어이없는 보도를 접하게 되었다.

“권양숙입니다.”라는 메일 한 통에 의심에 여지없이 뭉칫돈을 보냈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1월 사이 4억5천만 원을 송금한 사실을 확인하고 추가 수사를 하다가 채용 비리 혐의까지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메일을 받고 수억 원의 돈을 보냈다. 더욱이 전직 대통령의 혼외자라는 말에 앞뒤 가리지 않고 공직자로서 자신에게 위임된 직권을 동원해 사기범의 자녀 취업에도 개입했다는 얘기를 들으며 허탈감에 빠져야 했다.

전 정권의 영부인을 사칭한 눈짓에조차 이렇게 분별없이 달려드는 공직자를 두고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윤장현이라는 사람에게 권력이란 어떤 의미였으며 권양숙이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는 얼마나 컸을까 생각을 해 본다.

그들은 자신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어떻게든 줄을 대어 그들이 가진 권력과 지위를 하사 받기를 원하는 열망이 크면 클수록 권력을 향한 날갯짓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권양숙입니다.”라는 메일을 보는 순간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기회가 찾아왔음에 신에게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송금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돌아올 대가를 상상하며 나름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도 표를 위해서는 초라한 사람에게도 허리를 굽히며 국민의 편에 서겠다는 약속을 했을 것이며 어느 자리에서는 청렴을 가장했을 것이다. 젊은이들에게는 눈높이를 낮추면 취업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음을 강조하며 그들을 낮은 곳으로 인도하고자 애썼을 것이다.

검찰의 소환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프리카에 있다고 한다. 의료봉사팀의 일원으로 활동 중인 그에게 자신의 피해자에서 피의자로의 변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국면전환을 위해 어떤 방법을 동원할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이번 사건을 윤장현 전 시장 한 사람에게 국한된 일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타는 목마름을 채워줄 오아시스를 향해 달려간 곳엔 모래 바람만 불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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