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내가 탄 버스는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차 안은 한산하였다.

마침 시골 장터가 서는 날인 모양이다. 오일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골 노인들 몇 명이 좌석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때 내 맞은편 좌석에서 힘들게 기침을 하고 있는 젊은 여자에게 눈이 갔다.

여자는 첫눈에도 병색이 완연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입은 옷도 초라하였다. 거기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통을 악다물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여인은 고통을 이기지 못해 이마 위로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보다 못해 그 병이 든 여자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어디 아프세요?”

나의 물음에 여인은 간신히 손을 내저으며 고맙다는 웃음을 지어 보이려고 했다.

“많이 아프면 읍내 병원으로 가세요.”

나의 말에 여인은 띄엄띄엄 자신의 병세를 설명했다. 여인은 폐병말기였다. 시골살림에 제때 제때에 병원 약을 먹지 못했다. 그러자 차차 균들이 내성을 길러갔다. 해가 갈수록 처방약의 단위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래도 병은 낫지 않았다. 여인의 폐병은 그 어떤 약에도 내성이 생겨 더 이상 처방할 약이 없다고 의사가 최후선고를 했다는 얘기였다.

여인은 힘들게 얘기를 마치고 간신히 남은 기력으로 잔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때 버스가 섰다. 어수룩한 시골 노인 한 분이 어울리지 않게 장미꽃다발을 안고 버스에 올랐다. 나는 여인에게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걸 알고 노인에게 앉았던 좌석을 양보했다. 다시 처음 앉았던 내 자리로 돌아왔다. 노인은 병든 여인의 맞은 편 좌석에 앉게 되었다. 노인 또한 기운이 다했는지 장미다발을 꼭 껴안은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나는 그때 병든 여인의 눈이 몇 번이고 노인이 안고 있는 장미다발로 가는 것을 보았다. 여인은 장미의 싱싱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된 눈길이었다. 노인 또한 그런 여인의 눈길을 느꼈던 모양이었다. 감았던 눈을 뜬 노인이 눈앞의 젊은 여인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젊은 새댁이? 무슨 병이 들었기에?”

끝내 노인이 젊은 여인에게 입을 떼었다. 그러자 병든 여인은 고개를 돌렸다. 나는 보다 못해 노인을 향해 젊은 여인의 병세를 설명해 주었다. 갑자기 노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좁은 시골길을 굽이굽이 달리던 버스가 어느 산비탈 앞에서 다시 멈춰 섰다. 그때 노인이 몸을 비틀거리며 장미다발을 들고 일어났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노인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노인은 뜻밖에도 눈앞의 환자 앞으로 가서 몸을 세웠다. 병 든 여인이 노인을 올려다보았다. 노인이 말했다.

“보아하니 젊은 새댁이 이 꽃을 좋아하는 것 같구려.”

노인은 충동적으로 병 든 여인의 무릎 위에 장미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노인은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집 사람한테는 따로 설명을 하리다. 보나마나 우리 집 할망구도 이 꽃을 새댁에게 드린 걸 좋아할 거요.”

여인이 미처 대꾸도 하기 전에 노인은 급하게 버스를 내려섰다. 병 든 여인은 노인이 내민 꽃다발을 가슴에 안은 채 미적미적 걸어가는 노인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시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아나는 창문 너머로 노인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인은 길옆의 공동묘지로 들어가고 있었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