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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소화처럼

소화처럼

                                 /문정영



흰꽃이라는 이름의 처녀 무당으로 너는 짧은 생을 살았지 흰나비의 소곤거림이 너를 깨웠다는 기록을 읽은 적이 있지 어떤 빛으로도 나눌 수 없어 흰빛으로 남는다고 했어



붉은 꽃이 되려고 제 심장을 빼냈다고 들었지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피어날 수 없어, 눈멀고 귀 닫혀 얼굴 붉힌 봄날은 가고 말았지



어떤 통증이 그 문으로 들어가 대신 붉어졌고 불에 탄 자국이 그곳에서 수만 송이 꽃이 되기도 했지 내가 너를 찾았을 때 너는 그 곳에 없었어



내 첫사랑도 한때 흰빛이었지 고백이 붉어지기까지 매일 여름이었어 뜨거워진 꽃술을 달래지 못한 소화처럼 내 살아도 결국 선홍빛 여름날의 짧은 기록이었어

 

 

‘산만큼이나 높은 사랑들/ 골만큼이나 깊은 아픔들!’ 영화 ‘태백산맥’의 포스터 광고 카피가 아직도 생생하다. 소화는 태백산맥의 무녀 그 소화이리. 격동의 시대, 이데올로기의 혼란 속에서 핀 소화와 정하섭의 사랑은 여순사건으로 촉발된 소설 속 길고도 아픈 이야기의 시작으로서의 함축적 의미를 내포한다. 소설 속에선 ‘희디흰 갈꽃의 흔들림 같은 그녀의 슬픈 눈’으로 묘사된 그녀의 모습을 그려 시인은 벌교를 찾았던가. 흰빛이 주는 느낌은 순수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붉은 꽃이 되려고 제 심장을 빼내’고, ‘눈멀고 귀 닫혀 얼굴 붉힌 봄날’에 ‘어떤 빛으로도 나눌 수 없어 흰빛으로 남’은 빛깔이기에 모든 빛의 총체이며 궁극인 것이다. 소화는 운명의 지배당한 초월적 사랑의 대명사인지도 모른다. 시인의 첫사랑이 그러했나보다. 선홍빛 여름날의 짧고도 뜨거웠던 사랑의 상징으로서의 흰빛이 소화처럼, 쓸쓸히 빛난다. /이정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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