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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통찰]삶과 죽음, 그리고 웰다잉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공평한 것은 시간과 죽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에 대해 논하는 것조차 금기시 해왔다. 지금까지 인간이 풀지 못한 과제 하나가 죽음 이후의 세계이다. ‘죽음은 삶의 끝일까? 아니면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일까’ 하는 의문이 끝없이 생긴다.

성직자들은 죄를 짓지 않고 교리를 따르며 착하게 살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며 천국티켓이 종교를 선택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 양 강조한다. 천국은 경쟁, 고통, 물질적인 부족함이 없는 낙원이라는 희망을 끊임없이 주입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천국에 대해 다음 세 가지 의문을 던진다. “죽음의 경지를 넘어서 돌아온 이가 한 사람도 없다.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나 우리가 알 수 없는 고통을 받기보다는, 세상에 남아서 그 괴로움을 참고 견디려 한다.”라고 말한 햄릿처럼 천국의 존재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둘째 의문은, 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경건하게 살아야 하며, 혹여 가벼운 죄도 범하면 회개하면서 행복을 절제한 채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만 하는가이다. 또 한 의문은, 왜 수많은 성직자가 말로는 천국이 그렇게 살기 좋다고 하면서 행동은 오직 이생만 있다는 듯이 세상의 권위를 추구하고 부정축재와 성추행 등의 비리를 서슴지 않는가이다.

베스트셀러 ‘죽음 (death)’의 저자로 잘 알려진 예일대 셸리 케이건 교수는 인간에게 영혼도 사후세계도 없다고 단언한다. 그렇지만 누구나 죽음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삶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며,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죽음이 다가올 때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케이건 교수의 말에 모두 동의하지 않으나, 사후의 낙원보다 현재의 삶이 더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이생의 삶이 중요하지 않으면 신이 바로 천국으로 보낼 일이지 구태여 인간들을 이 땅에서 살게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케이건 교수가 삶의 의미와 죽음의 본질을 통찰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내려놓는 계기를 제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죽음학(thanatology)이라는 학문과 웰다잉 (well-dying)이 사회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고통 없이 죽는 것이 웰다잉의 참뜻은 아니다. 더 중요한 의미는 죽음을 인정하고 생존해 있을 때 미리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죽음 준비는 유서 작성, 일기·편지 쓰기, 유품정리 등을 통해 자신의 이름과 살아온 날들을 아름답게 추억하고 남기는 일이다.

달포 전 경기도 고양시에 죽음 준비와 죽음 후의 정리를 돕는 일을 하는 ‘한국유품정리관리협회’가 설립됐다. 설립 발기인들을 보면, 이 분야의 사회적기업에 종사했던 사람, 한국보다 먼저 웰다잉문화가 성장한 일본에서 관련 학문을 수학한 사람, 복지행정이나 사망사고 수사에 종사한 전직 공무원 등으로서 폭넓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다.

앞으로 유품정리사 양성교육, 독거노인이나 치매환자들을 위한 홈케어 서비스, 노인들을 위한 마침표노트 쓰기, 자살예방 대책 등 다양한 공익사업들을 펼친다고 한다. 내년 1월에는 유품정리와 웰다잉에 관한 포럼도 열 예정이다. 지난해 ‘경기도 웰다잉 문화조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경기도가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웰다잉문화 확산을 모색해 봄 직하다.

고령화추세와 더불어 고독사와 자살이 해마다 증가하고, 의료발달의 역설인지 모르겠으나, 말기 선고를 받고 기약 없이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환자들도 늘어가고 있다. 경기도, 관련 비영리단체, 지역사회가 함께 노력하여 이 땅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없기를. 그래서 임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작성하는 ‘마침표 노트’가 천국으로 가기 위해 이생의 끝자락에서 편안히 쉬는 ‘쉼표노트’로 쓰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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