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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유연하고 자유로운 태도를 지녔던 마티스

 

마티스의 두 대작 ‘춤’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더 꺼내보고자 한다. ‘춤’에서는 다섯 명의 등장인물이 유려한 실루엣을 형성하고 있는데 반해, ‘음악’에서는 같은 수의 사람들이 서있거나 앉아있는 포즈를 취함으로써 ‘춤’과 비교하면 다소 단조로운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그 단조로움 속에서 음악은 또렷하게 존재한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인물들의 진지한 모습 속에서, 비록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 초록색 초원과 광활한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경이로운 음악의 존재를 우린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춤은 시각적인 장르이기에 화가 입장에서는 표현하기 훨씬 수월한 소재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음악을 표현하는 작업은 그리 간단치 않았을 것이다. 그즈음 피카소와 브라크는 악보나 악기의 일부를 그린 조각을 가지고 콜라주 작업을 함으로써 음악을 표현하고 있었다. 마티스는 음악을 대하는 인물들의 진지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는, 조금 더 우직한 방식을 택한다. 비록 화가가 지닌 기교를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음악이 지닌 경이로움,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영혼이 작품 속에 충만하게 존재하게 되었다.

이처럼 마티스는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발 물러날 줄 아는 작가였다. 호전적이며 전투적인 자세를 취하는 대신 깊은 내면에 파고 들어가 곱씹고 또 곱씹는 화가였다. 이질적인 새로운 세계를 수용해야만 하는 타이밍이 왔을 때 그는 과감히 자신을 내어주곤 했다. 물론 ‘음악’이 마티스의 화가로서의 입지를 약화시키거나 희생시킨 작품은 절대로 아니다. 두 개의 대작을 완성하면서 그는 의뢰자 슈츄킨으로부터 두둑한 사례를 받을 수 있었고, 이 두 작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 부었던 슈츄킨은 한동안 피카소에게 작품을 의뢰할 수 없었다고 하니, 두 사람의 미묘한 인연은 여기에서도 반복된다.

아무튼 마티스의 이러한 유연한 태도 덕분에 다른 장르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도 이후 많이 수행하였다. 특히 말년에 콜라보레이션 작업은 더욱 활발해진다. 필자는 마티스의 작품을 바라보며 그가 지닌 재능과 기법에도 매번 놀라지만, 그가 지닌 특유의 유연하고 자유로운 태도에 감동을 받을 때도 많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마티스가 말년에 다다랐을 때, 관절염과 암을 앓고 있었던 화가에게는 붓을 들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작업을 절대 손에서 놓지 않았다. 붓 대신 가위를 들고 채색한 종이를 오리며 작업을 했다. 교회의 의뢰를 받아 예배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도 했다. 젊은 시절 화가의 가슴을 충만하게 채워주었던 시집의 삽화 작업을 하기도 한다. 비록 몸은 쇠약해졌지만 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흡수하며 활동 영역을 전방위로 뻗고 있었으니 화가가 지닌 젊고 도전적인 마인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당시에 마티스의 행보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눈도 있었다. 피카소는 마티스가 공연히 엉뚱한 작업들에 손을 뻗치고 있다며 자주 어리둥절해 했다고 한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할까 한다. 마티스가 직접 보들레르의 시 서른 세편을 선별하고 삽화도 그려 넣어 엮은 책이다. 오래 전 ‘음악’을 그리면서 자신의 기량을 자랑하는 대신 음악이라는 존재에 큼직하게 자리를 내어주었던 화가의 기지가 이 시집에서도 발휘된다.

보들레르의 시는 마티스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모든 화가들에게는 특별한 존재였다. 보들레르가 프랑스의 전위적인 젊은 화가들을 독려하는 미술평론가였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생생하고 입체적인 언어는 젊은 예술가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그들을 혹독한 창작의 세계로 내몰았다. 노년의 마티스는 보들레르의 시를 다시 한 번 곱씹으면서 자신의 생을 정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인물들의 얼굴이 차례차례 지나간다. 대부분 여인의 모습이고, 또 그중 다수가 실제 보들레르의 연인이라고 알려진 이국 태생의 여인이었다. 고양이 눈을 닮은 여인들의 눈은 다정함과 조롱의 시선을 함께 머금고 있다. 화가는 시인과 진정 공감하기를 원했고, 시인과 화가의 공통적인 슬픈 운명을 이 책에 담고자 했던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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