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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 화홍문 下

 

화홍문은 동쪽 언덕에 있는 방화수류정과 하나의 조합을 이루어 아름다움을 뽐낸다. 시냇물 수면에 비친 화홍문을 찍기 위해 수원천 안으로 대형카메라를 들고 온 사람을 가끔 볼 수 있다. 야외 활동하기 좋은 9월 가을밤 이곳에서는 수원 야행(夜行) 행사 진행되는데,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즐겁게 지낸다. 바로 이곳이 수원화성에서 가장 낭만적인 곳이다. 화홍문을 찾은 대부분 사람은 이 건축물이 정조 때 지어진 것으로 생각하지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한다. 북수문은 홍수로 두 번의 붕괴와 복원이 있었는데 마지막 복원은 1926년으로 90년이나 지난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의 복원은 모두 옛 제도에 따랐다고 하지만, 원형과는 거리가 있고 현실에 맞게 수정·변형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수문의 홍예구조가 볼트형식으로 변하고 첩(堞)과 여장(女墻)의 두께 차이가 작아졌다. 또 여장은 타구(타口, 타와 타 사이)가 없는 평여장으로 변하고 누각의 너비가 좁아져 다리의 통로가 넓어진 것들은 전편에서 밝힌 바 있다. 이번에는 누각 하부벽체의 문양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현재 남아있는 문양은 외곽에 뇌문(雷文, 번개문늬)이 있고 내부에는 벽돌 6줄이 수평으로 놓여있다. 이런 방식은 경복궁 자경전의 담장에도 보여 우리가 잘 사용하고 있는 친근한 문양이다. 그러나 이 문양은 창건 당시의 문양이 아니라 변형된 것이다.

창건 당시 문양의 원형을 찾아보자. 의궤의 건축도에는 십자문양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십자 문양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방화수류정의 서쪽 하부벽체에도 있다. 십자문양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벽돌을 이용하는 조적양식의 기본문양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흔히 사용되는 문양이다. 일찍부터 벽돌을 많이 사용해 온 중국은 사찰에서도 벽돌 벽에 십자문양을 많이 남겼다. 여러 사항을 고려할 때 화홍문 누각 하부벽체 문양의 원형이 십자문양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방화수류정의 십자문양을 가지고 다산과 연관 지어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십자문양이 사라진 것은 1차 복원 시점인 것으로 보인다. 1920년 이전에 찍은 옛 사진에 십자문양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차 복원의 공사는 도청 이조연(李肇淵, 1791~?)이 책임자였다. 그는 왜 십자문양보다 만들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뇌문을 만들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의궤의 건축도에도 나와 있고 바로 옆에 위치한 방화수류정에도 있는데 굳이 다른 문양으로 만든 것은 분명 의도가 있어 보인다.

화홍문의 창건 시기는 1794년으로 당시 정치 상황은 천주교를 문제 삼았지만, 심한 탄압이 없던 시기로 십자문양이 문제가 되지 않아 사용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정조가 죽자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고 헌종 시기 1839년 안동 김씨를 몰아낸 기해박해가 있었으며 가톨릭 신부인 김대건을 참수한 1846년 병오박해가 있었다. 복원공사의 시점이 종교 탄압 사건이 있던 때라 공사 책임자로서 십자문양을 재사용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보인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인 꽃담 문양 중 하나인 뇌문(사례로 경복궁 자경전 꽃담)을 차용했다고 본다.

1차 복원에서 사용한 문양은 동쪽과 서쪽의 벽체 문양이 다르다. 외곽에 뇌문이 있는 것은 같으나 그 내부문양은 서쪽 벽체에는 사격만자(斜格卍字)가 있고 동쪽에는 지금처럼 벽돌이 수평으로 놓여있다.

2차 복원의 문양은 붕괴 이전의 내용에 상당히 근접한 모습으로 이전의 사진을 보고 복원에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서쪽의 문양은 이전과 완전히 일치하나 동쪽의 문양은 수평문양이 만자가 생략된 사격문양으로 변했다. 굳이 새로 만들면서 한쪽만 다르게 만들고 또 사격만자로 하지 않고 일반 사격문양으로 한 것에 대한 의도를 모르겠다.

현재 문양은 1차 복원에서 동쪽벽의 수평문양을 따라 동서 벽체 모두에 적용되어 있고 외곽의 뇌문도 이중선으로 되어있다.

이번에 화홍문을 살펴보고 2번의 복원으로 원형이 많이 변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복원할 때마다 당시의 정치 상황이 반영되었고 형태가 변경되어 왔다. 특히 문양의 변화는 아픈 역사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화홍문의 십자문양 원형이 복원된다면 방화수류정과도 디자인 맥락도 같아 두 개의 건물이 진정한 짝을 이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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