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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들

                                    /정호



생은 지우개도 없는 문장이다 도돌이표도 없고 누가 대신 필사해 줄 수도 없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써내려가지만 뜻대로 써지지도 않는 불립문자다 오로지 각자의 호흡에 따라 단문으로 짧게 끊거나 길게 이어지기도 하는 만연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명문엔 표절금지도 없지만 복사본 하나 나온 적 없는 생기체다



이순 넘어 되돌아보는 내 문장 되짚을수록 부끄러운데 누구에게 일독을 권하랴 그래도 마지막 구절 하나는 깔끔하게 마무리 하겠다고 한두 자씩 끄적거리며 오늘의 여백을 메꾸고 있는



이 흐릿한 글씨체를 온몸으로 밀고 간다

 

 

시 쓰기 자체를 성찰하는 메타시이다. 시인은 “생은 지우개도 없는 문장”이라고 상징적으로 정의한 뒤 “불립문자”, “만연체” 등에 비유하다가 급기야는 “생기체”라는 멋진 조어를 만들어냈다. 시인은 시 쓰기가 “되짚을수록 부끄럽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마지막 구절 하나는 깔끔하게 마무리 하겠다”며 결의를 보이기도 한다. “흐릿한 글씨체를 온몸으로 밀고”가는 노력이 시인 자신의 존재 방식일 것이다. 살아온 세월에 대한 희로애락의 온갖 연륜들이 스며있고 “누가 대신 필사해줄 수도” 없는 생. 이 시의 미학적인 특질은 끊임없이 의미를 추구하는 심리와 연계성을 갖는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표현된 “문장”은 기표를 넘어서는 기의로써 정서의 울림에 방점을 찍게 한다. /박수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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