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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뺑덕어미의 삶

 

 

 

 

 

이사를 하면서 그동안 쌓기만 했던 물건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물건들은 구입한 순간 잠깐의 즐거움을 주고 난 후 언젠가 사용할일이 있을거란 기대만 잔뜩 뒤집어 쓴 채 아파트 안을 채우고 있었다. 점점 쌓여 간 조용한 물건들에게 공간을 빼앗긴 나로서는 사는 공간이 부족해 보이고 매일하는 청소에도 깔끔해지지 않는 살림이 어렵기만 했다.

참 많이도 끌어안고 살았다. 욕심을 덕지덕지 붙여 가끔은 쓸지도 몰라서 혹은 지금 필요 하진 않지만 언젠가는 쓸데가 있을 거란 헛된 기대를 짊어진 물건들을 꺼내놓으니 큰 트럭 두 대를 채우고도 부족했다. 살던 집을 줄여서 간 집은 수납공간이 많았던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두서없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어찌해야하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세상은 예쁘고 갖고 싶은 것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가지고 싶은 것을 구매하고 나면 그렇게도 갖고자 했던 간절함은 또 다른 물건들로 간절함이 쉽게 옮겨갔다. 갱년의 심리적 허기가 이유였을까 왜 그리도 물건에 매혹된 시기가 왔는지 이유를 잘 알긴 어렵다. 알뜰히 살았던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여유가 생기면 언젠가 누려 보리라던 막연한 물욕의 시간이 물밀 듯 밀어닥친 것인지도 모른다. 사고 들이고 주말이면 또 쇼핑하러 나가서 집을 채웠다. 필요와 불필요의 경계없이 단순한 구입의 만족만을 누렸던 결과였다. 자랑할 일은 아니었지만 지탄받을만한 일도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보이는 물건으로 인해 보이지 않게 느껴지는 일말의 죄책감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자꾸 쌓아도 아무 일이 없을까. 죄책감을 해결하고 집안의 적체된 먼지와 빽빽한 공기로부터 자유로울 대안은 없을까.

심청전의 또 다른 주인공인 짧지만 강한 캐릭터를 가진 뺑덕어미의 가치가 떠 올랐다. 부정적 이미지의 그녀지만 물건에 대한 사고방식은 나쁘지 않다. 인당수로 팔려간 심청의 빈자리를 쉽게 꿰찬 그녀는 심학규의 세간살이를 그녀의 속된 기쁨을 위해 마구 처분한다. 팔아서 술도 먹고 엿도 사먹으며 포동포동 살도 찐다. 그리고 더 이상 팔 것이 없어지자 심학규가 관청으로 떠난 사이 짐을 싸 줄행랑을 놓는다. 참으로 융통성있는 간단한 삶이다.

물건에 나를 지나치게 투영하게 되면 구매하는 것은 내가 주체이지만 어느순간 물건들에게 주인의 자리를 내주는 순간이 온다. 필요하다 생각했지만 정말로 필요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도 힘들다.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고 침묵하기에 더없이 내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물건은 위엄있는 침묵으로 나를 지배하고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건에 사로잡힌 방만한 삶에 종지부를 찍고 원활한 순환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적당한 한계를 스스로 깨닫는 것은 중요했다.

마침 동생으로부터 사용하지 않는 생활용품을 개인적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앱을 소개 받았다. 처음엔 필요없는 것을 쓰레기로 버리다가 조금씩 용기를 내어 앱에 얹어 보았다. 자리만 지키던 물건들이지만 생각한 만큼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서운함만 빼면 그럭저럭 새로운 주인을 찾아 하나씩 훌훌 떠나갔다. 추억과 애정까지 깃들어 조금은 서운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뜻밖의 홀가분함이 찾아왔다. 정리와 청소에도 효율성이 높아지고 물건에 양보했던 공간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더니 무겁던 마음에도 바람이 불어들어 가볍기까지 했다.

비싼 가격의 물건이 가벼운 가격으로 처리되면서 드는 생각은 참 어리석었구나였다. 물건을 소유하려 필요이상으로 구입한 것도 어리석었지만 버리지 못한 집착도 참으로 어리석었음이 비로소 보였다. 당분간은 비우고 덜어내는 시간을 갖는다.

뺑덕어미의 삶살이가 표본의 가치가 아니긴 해도 지금의 내겐 한 수다. 집을 창고삼아 쌓는 물건의 수가 행복의 양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뻔한 교훈도 되새긴다. 조금 더 가치 있는 것에 마음을 열고 가치의 기준을 재고하는 인생의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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