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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커튼의 존재

커튼의 존재

/김호성

부풀어 오른 커튼을 칼로 찌른다 창밖으로 밀려난 바람에는 표정이 없다

말없이 등불을 가져다 놓고 사라진 남자가 그 속에 있다 눌린 얼굴로 창문을 밀어내며

창문이 열렸다 닫힐 때마다 새들의 목이 잘린다 낮은 지저귐만이 벽을 연하게 만든다 벽 틈에 꽂힌 칼날이 짧은 머리카락처럼 굵어진다

창틀에 묶인 남자는 아주 납작해져서 방의 주인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천장에 달라붙으려 한다 맨살에 얼음 알갱이가 돋아난다 한 방향으로만 굴러가는 상처는 마녀의 혀를 닮아간다

옮아가는 커튼의 몸부림에 실려 다음 밤으로 가기 위해, 피 묻은 티슈들이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해서 입김 위에 올라타듯이

창문 밖으로 남자를 던지면, 한 순간 정적이 생긴다 사람들이 떨어지는 남자를 받으려고 손을 뻗는다

 

 

 

 

커튼이 흩날릴 때 떠오르는 이미지들로 배치되어 있다. 불안하고 위험하며 유동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화자는 커튼 속에서 “등불을 가져다 놓고 사라진 남자”를 연상한다. “창문이 열렸다 닫힐 때마다 새들의 목이 잘린다”거나 “벽 틈에 꽂힌 칼날이 짧은 머리카락처럼 굵어진다”는 감각적인 표현에서 좌절과 우울의 정조가 확장된다. 급기야 “창문 밖으로 남자를 던지”기에 이르는 데 이러한 상징들이 환기하는 공통적인 모티프는 어떤 불길함으로 파악이 되는 모호성이다. 또한 이 시는 내면세계의 참담한 감정을 떠오르는 언어들의 상호충돌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언어의 그림을 그려 보여줄 뿐, 행동을 개시하려 하지 않는다. 사용된 시어들 사이에서 의미 연관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 시는 현실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인간 실존의 내면에 있는 무의식적 환상을 심상화한 것으로 이해된다. /박수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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