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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동칼럼]세밑, 이 시간은 새해만큼 중요하다

 

 

 

 

 

또 한 해의 마침표를 찍는다. 무술년 개띠의 해가 저문다. 마지막 잎새 같은 달력이 일 년 동안 쌓인 고통을 하얀 눈 속에 묻어 두는 세밑이다. 사람마다 감회가 다를 것이다. 세밑은 그저 하루가 지나가는 게 아니다. 혹자는 별 탈 없이 보낸 1년이 다행스럽다고 애기할 것이다. 다른 이들은 죽을 고비를 넘긴 최악의 해였다고 화를 낼지 모른다. 희비는 늘 엇갈리는 법이다. 시린 계절 탓인지 끝이라는 세밑 탓인지 사람들의 마음도 보폭도 빨라진다.

한 해의 끝자락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나라안팎으로 부딪친 일들이 걱정을 더한다. ‘더’하는 것보다 ‘덜’한 게 좋으련만 우리를 에워싼 정황은 녹록치 못하다. 촛불의 힘으로 태어난 문재인 정부는 촛불에 담긴 소망대로 무언가 변화하고 새로워져 나라다운 나라로 가는 듯 하드니 여기저기서 엇박자가 나고 있다. 인사가 만사(萬事)인데 망사(亡事)이게 해서는 안 된다. 정부 인사가 그렇고 경제가 그렇고 안전이 그렇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성, 노동, 교육 분야에서도 삐걱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고공(高空)행진하던 지지도도 내리막이다. 물론 어느 정책이고 잘해보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겠지만 국민 눈높이와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챙기고 점검하여 심기일전(心機一轉)해야 한다. 나라 밖 문제도 걱정을 ‘덜’했으면 좋겠는데 이 역시 만만치 않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이런저런 세밑모임이 많기에 그렇다. 한 해를 끝내면서 그리웠던 얼굴들을 대하고 기다렸던 목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는 자리라 반갑고 흥겨울 것이다. 하지만 술잔이 오가는 흥겨움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상대의 얼굴을 보면서 내 얼굴을 살펴보고, 상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내 목소리를 더듬어 보는 그러한 자리가 되어야 한다. 한 해 동안 내 몸과 마음에 누더기를 걸치지 않았는지. 누군가와 다투고, 누군가를 미워하며 시기하고 질투하지는 않았는지,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보고도 못 본체 하지는 않았는지를 성찰(省察)하는 시간이 돼야 송년회로서의 뜻이 더 깊다.

‘끝’이라는 것은 인간을 착하게 만든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여운,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등과 같이 어느 경우에는 끝이라는 것이 슬픈 느낌을 주기도 한다. 세밑은 한 해의 끝이다. 끝은 마무리다. 마무리는 아름다워야 한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365일을 무엇으로 채웠나를 되돌아봐야 한다.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한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은 소중하고 그 시간의 가치는 유년이나 노년이나 다를 바 없다. 충만한 시간을 보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한 해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이끄는 것은 간단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다.

세밑에 누구나 세월이 머물다 간 달력에 그 많은 칸들을 좀 더 알차게 채우고 싶었는데, 그리고 오래 붙들어 두고 싶었는데 하는 마음을 갖게 마련이다. 잡아 둘 수 없는 게 세월임을 새삼 가슴 아리게 느끼게 된다.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채우기에만 급급하지 않았는지. 어떻게든 많은 수확을 얻어 곳간을 채우려고 애써오지 않았는지가 맴돌며 우리 모두를 일깨우는 세밑이면 좋겠다. 지나쳐버린 소소한 일상이 쌓여 한 해가 인생이 된다. 그렇게 평범한 줄로만 생각했던 일상이 돌아보니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들이며 기적이고 귀한 시간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것도 세밑이다. 그 소중한 시간들이 한 해 내 삶을 지탱해 주는 뿌리가 되고 자양분이 되었음을 알게 되는 것도 세모(歲暮)다. 그래서 세밑에 맞는 시간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으레 해마다 송년음악회가 열리는 이유다. 음악은 사람의 심성을 다스려 선하고 고결하게 해준다. 존 로건은 ‘음악은 정신의 약’ 이라고 했다.’ 인격을 수련하고 품성을 도야하는데 도움을 주기에 그렇다. 며칠 남지 않은 시간, 마음을 모아 아름다운 추억을 쌓고 한 해 잘 마무리하여 송구영신(送舊迎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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