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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동아시아에는 평화 한반도에는 통일의 햇살이

군사긴장 속 화해의 손 내민 문재인 대통령
평창올림픽 참가로 화답한 김정은 위원장
세차례 남북정상회담과 첫 북미정상회담 열려
北, 비핵화 협상 의지-美, 대외정책 변화 속
남북협력 굳게 다져야 동아시아에도 평화 도래

 

 

 

최 형 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한신대 통일평화정책연구원 원장

기적의 한해 2018

시간을 되돌려서 1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한반도에는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탄도탄 실험으로 일촉즉발의 군사긴장이 고조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 19일 올림픽 주관방송사인 미국 NBC와의 KTX 인터뷰에서 올림픽 기간 동안 한·미 군사훈련 연기를 미국에 제안했다고 하면서 북측에는 올림픽 참가를 권유하는 초청장을 발송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화답했다. 핵단추가 자신의 책상 위에 있다고 엄포를 놓긴 했지만, 전반적 기조는 확실히 ‘대립’이 아니라 ‘대화’였다. 이 신년사에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북의 최고지도자가 인민 전체를 상대로 2월 동계올림픽 남측 개최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참여의사를 공식화했다는 점이다. ‘신년사’는 “남조선 겨울 올림픽은 민족의 위상을 높일 것이며 대회가 성과적으로 열리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축원하면서 “동족의 행사를 돕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끝을 맺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88 서울올림픽 개최를 북한사람들은 듣지도 알지도 못했고 김일성 주석과 북한 지도부 역시 믿으려하지 않았다. 평창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남북, 북미대화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전후 최초로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됐다. 북한은 약속대로 핵·미사일 실험을 전면 중단했다. 미국 또한 작년 한해 키리졸브를 포함한 군사훈련을 중지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을 하면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상호신뢰를 확인한 것은 분단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남북통일과 동아시아 평화를 향해 70년 만에 찾아온 천재일우의 기회를 반드시 움켜잡아야 한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북한 비핵화

북한의 전략적 목표가 핵무기 보유가 아니라 경제발전을 통한 인민생활 개선에 있음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시작점은 2017년 11월 말의 핵무력 완성 선언이었다. 그런데 핵무력이 어떻게 완성에 도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결국 자신들의 핵무기 기술수준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이를 기반으로 미국과의 관계개선, 곧 체제 인정과 경제봉쇄 제거를 향한 비핵화 협상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에 다름 아니다. 북한의 비핵화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런데 어째서 비핵화를 향한 북미대화는 지지부진해 보이는 걸까?

겉보기엔 교착을 거듭하며 지지부진해 보이는 북미대화가 실제로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한다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이 그렇다. 미국과 북한이 핵문제로 협상을 시작한 지난 30년 동안 북한의 요구는 오직 하나, 자신들을 존중해달라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 하지만 아무리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미국의 일방적 의사에 굴복하는 모양새는 절대 취하지 않겠다. 미국 또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해서 경제제재 완화나 종전선언과 같은 성의를 보이라는 게 북한의 일관된 주장이다.

강대국은 미국에 한정되지 않는다. 정치체제로서의 북한은 구한말 강대국 세력정치에 휘말려 식민지로 전락한 대한제국의 치욕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단으로 성립한 나라다. 그 덕에 중소분쟁의 와중에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주권을 보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 도움도 없이 자신들의 힘만으로 살아가겠다는 고립주의 자강노선은 경제발전에서는 독이 됐다. 이렇게 본다면 앞으로 북한이 취할 발전전략 대강의 윤곽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 그것은 북한 노동당이 영도하는 사회주의 정치체계를 확고히 유지하면서도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개선을 위한 개혁·개방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도로 요약할 수 있다.



비대칭적, 종속적 한미일 삼각동맹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들어 장기화돼도 양국은 잃을 게 별로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힘들어질게 뻔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지난 12월 26일, 북측 판문역에선 남북 철도·도로연결 착공식이 있었다. 남북관계의 중대 진전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반입하는 모든 물자는 건건이 UN 안보리의 제재면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모두가 다 알고 있듯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미국이 주도한다. 안보리의 제재면제 조치 역시 미국의 양해 하에 이루어진다. 북한과의 경협조치는 아무리 사소해도 미국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경제협력이 이 정도인데 외교안보라고 해서 사정이 다를까?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나라의 주요 외교정책, 특히 북한을 포함한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주변국 관련 안보정책은 한미동맹의 자장 안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은 패전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남한은 스스로 지킬 힘이 없다고 판단해서 자발적으로 한미동맹에 뛰어들었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현재의 군사동맹관계가 지속되는 한 두 나라 모두 미국의 안보정책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면에선 별 차이가 없다.



미국, 세계의 경찰 역할 그만둘 때

북미핵협상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전략적 기회가 열리고 있다. 핵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장기화 할 경우, 미국은 최대 압박정책을 지속해 나갈게 분명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지난 오바마 행정부가 했던 대로 전략적 인내 카드를 다시 끄집어 드는 것이다. 전략적 인내 정책의 목적은 동아시아의 현상유지다. 북한 핵문제를 이용해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하는 게 더 큰 목표다. 얼마 전 논란이 된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사직서 역시 이러한 냉전적 동맹관에 입각해 있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게 한·미·일 군사동맹을 보다 견고히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은 위안부문제 합의과정에서 잘 드러났듯이, 미국의 ‘재팬 퍼스트’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에 의거해서 일본의 하위 군사파트너로서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마바 행정부가 했던 방식대로만 하지 않을 것 같다. 보다 공격적인 해결책, 곧 협상을 통한 핵문제 해결에 별반 성과가 없다고 판단하면 중국, 러시아에 압박을 가해 북한의 정권교체를 시도하려 들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게 또 경제제제와 군사작전을 병행하는 ‘최대의 압박정책’의 핵심이다. 이 와중에 한반도에서 전쟁 일보 직전의 군사적 긴장이 극대화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역대 미국 행정부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문제에 가장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데 현재의 정세를 이해하는 또 다른 역설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전후 70년간 유지돼온 유럽, 아시아 전역에서 군사동맹을 재조정하는 식의 새로운 안보정책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최근 시리아에서 미군 철수 발표가 하나의 신호탄이다. 한미동맹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면 미국의 신 대외정책은 우리에게 기회일까, 위기일까?

 

 

 

 



트럼프 행정부의 신 대외정책과 한반도의 전략적 기회

어쩌면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변화로부터 우리에게 전략적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북미핵협상이 성과를 내며, 이를 바탕으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 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이제 미국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도 주한미군감축과 같은 한미동맹의 재조정 작업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있어서도 향후 한반도에 펼쳐질 새로운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적극적이고 담대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반미주의를 의도함은 결코 아니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내에서 미국의 균형자적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통일에 이르기까지 한미동맹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음을 기꺼이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시대에나 필요했을지 모를 기존 한미동맹 식의 일방적 관계는 더 이상 곤란하다. 한마디로, 한미동맹은 단순히 방위비 분담금과 같은 액수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는 무엇보다 북한의 군사위협에 있었다. 싸드는 북핵 위협 때문에 들여온다고 했다. 하지만 북핵문제가 해결 기미를 보이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비롯한 북미관계 정상화가 일정에 오를 경우, 북한이 과연 군사적으로 위협이 되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북한의 군사도발과 위협을 명분으로 존재해온 한미동맹 역시 기존의 경직되고 일방적 관계에서 벗어나서 개편이 필요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리고 이 빈 공간을 남북협력과 공조로 점차 채워나가야 한다. 어째서 그러한가? 이는 단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서만이 아니다. 현재의 동아시아 정치구도 하에서라면 남과 북이 지정학적 이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 기존에 해오던 대로 군사적 적대와 대립을 지속한다면, 한·미·일 대 북·중·러 동맹이라는 동아시아 세력균형 체제 하에서 운신의 폭도 없을 뿐더러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자칫 분단의 영구화는 물론, 동아시아 평화 역시 점차 멀어질 것이다.

하지만 남북이 경제협력을 고도화하면서 경제통합의 수준을 높여가고 정치, 군사안보적 차원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통일을 향한 전략구상을 공동으로 실현시켜 나간다면 동아시아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지형이 펼쳐질 것이다. 요컨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라도 남북공조가 핵심이다.



2019년, 전인미답 동아시아 평화와 한반도 통일의 길을 향해

1968년 1.21 사태와 푸에블로호 억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슨 대통령이 특사로 파견한 사이러스 밴스 전 국무장관은 남북 정치지도자들을 두루 접촉한 이후 “남북을 막론하고 한민족 가운데 ‘비둘기파’도 ‘매파’도 없고 모두 호랑이처럼 보인다”는 유명한 소감을 남겼다. 호랑이와 호랑이가 사생결단의 각오로 싸운다면 어떤 결과를 낳겠는가? 공멸이다. 이와 반대로 서로 협력하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간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 분명하다.

남북화해와 상호합의에 의거한 평화통일 과정은 그 어떤 민족도 해내지 못했던 ‘전인미답의 역사적 과업’을 성취하는 일로 여겨진다. 한국 전쟁 이후 남과 북은 서로를 괴뢰로 낙인찍고 격멸의 대상으로 선전하는 데 열을 올렸다. 돌이켜보면, 두 체제 모두 나름의 정당성을 갖고 있었다. 상호인정과 역지사지의 정신에 기초해서 남북화해와 협력을 힘차게 다져나간다면 동아시아에는 평화의 기운이, 한반도에는 통일의 햇살이 비쳐올 것이다.

/최정용기자 wesper@

/사진=노경신기자 mono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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