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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팥죽 한 그릇의 사랑

 

 

 

재래시장 입구에서부터 한참을 걸었나보다. 생선전을 지나 떡집을 돌아 순대국밥 집이 보이고 왼쪽으로 구부러져 비스듬히 꺾인 골목길을 한 번 더 돌아들자, 저만치 웅성거리는 사람들. 벌써 자리가 없는 듯 보인다. 문 밖에서 기다리면 금세 들어가겠지. 쑥 쑥 줄어드는 순서를 따라 이내 들어선 좁은 식당. 아줌마 손칼국수집이다.

빈자리 하나 없이 빼곡하게 들어앉은 사람들. 사람 정이 그리울 때마다 무심코 찾게 되는 메뉴라곤 칼국수, 보리밥, 팥죽뿐인 내가 좋아하는 푸근한 식당이다. 평소에 먹곤 하던 손칼국수를 뒤로 하고 오늘은 왠지 앞자리의 할머니가 드시는 팥죽에 자꾸만 눈이 갔다.

“할머니, 오늘은 다들 팥죽 드시는 날인가 봐요. 많이들 팥죽을 드시네요.”

“그러게 유난히 팥죽이 맛있어. 동지가 며칠 안 남았잖여. 새알이 아주 실하구먼.”

금방 내어온 뜨끈뜨끈한 팥죽 한 숟가락에 김장김치를 얹어먹는 그 맛이라니, 연이어 동치미 국물 한 숟가락까지. 어린 날 엄마가 해 주시던 달큰하고 쌉쌀한 그 팥죽으로 이어지는 추억의 맛이다.

동짓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어머니의 팥죽. 가마솥에 푹 익힌 팥을 팍팍 으깨서 껍질을 걸러내고 걸쭉한 국물을 다시 한 번 끓인다. 온 식구가 모여앉아 생김새도 크기도 제각각으로 빚어낸 찹쌀 새알을 넣고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까지 한 번 더 익히면 마무리가 되던 팥죽. 다 끓인 팥죽은 먼저 몇 개의 큰 양푼이에 나누어 담아 마당에 자리 잡은 뒤주 앞에도, 대문 앞에도, 장독대에도 잠시 놓아두었던 것 같다. 그리고 큰 집, 작은 집, 이웃집에 끓인 팥죽을 나누어 드리고 나서야 비로소 가족들이 먹기 시작했다. 이웃에서 나누어준 다양한 팥죽까지 맛보게 되는 동짓날, 그 특별한 의식은 어쩌면 또 다른 모습의 따끈따끈한 사랑이었던 것 같다.

24절기 가운데 스물두째 절기인 동지의 처음 유래는 중국 ‘공공씨’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전염병 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염병 귀신을 쫓으려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고도 한다. 우리 조상들이 동지에 팥죽을 쑤면 먼저 사당에 차례를 지낸 다음 방과 장독, 헛간에 한 그릇씩 떠다 놓고, “고수레!”하면서 대문이나 벽에다 죽을 뿌리는 것은 붉은 팥죽으로 악귀를 쫓는 의식이지만 한편으론 겨울에 먹을 것이 부족한 짐승들을 배려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 다음 식구들이 팥죽을 먹는데 마음을 깨끗이 하고, 새해를 맞는 의미 또한 담겨 있다고도 했다.

“야야, 동짓날 잊어버리지 말고 이걸로 팥죽 끓여먹어라. 알았제?”

“팥죽을 먹어야 새해를 맞는 기라. 엄마가 직접 지은 팥이니까 얼매나 맛있겠노? 꼭 챙겨 먹어야 된 데이”

식당을 나오면서 문득 떠오른 말. 그랬다, 매년 챙겨주신 어머니의 팥이 있었다. 번번이 받은 팥을 냉동실에 저장만 했지 팥죽을 끓여 먹질 못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늦은 퇴근을 한 내가 주섬주섬 찾아낸 팥이 제법 여러 봉지다. 그동안 무심하게 모아두기만 한 어머니의 사랑. 나는 늘 받기만하고 나누질 못했다는 생각에 이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며칠 남지 않은 이번 동지에는 이 팥 푹푹 삶아서 팥죽을 끓이고 싶다. 뭉긋하게 스며든 어머니 사랑까지 담아 누구라도 좋을 그들과 아낌없이 나누고 싶다. 동짓날 뜨끈뜨끈한 그 시골 아랫목 떠올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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