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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우대식

음악 아닌 것으로 음악 하기

나인 것을 나 아닌 척하기

가을날 듣는 만가輓歌

가을날 곁불을 옆에 두고 옹송거리며 마시는 낮술

사람은 거리를 두고 그림자 사랑하기

집 떠난 모든 이들의 이름을 불러보기

그리워하다가 다시는 생각하지 않기

집 떠난 모든 이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보기

악다구니로 떼쓰며 울다가 아무 보는 이 없을 때는

슬그머니 일어나 옷 털기

꾀죄죄한 민낯으로 설산雪山에 대적하기

눈이 멀어도 먼 것을 모르고 형형색색 달콤하게 이야기하기

신을 실컷 조롱하다가 그 발아래 한없이 통곡하기

영원한 것이 있나요

이런 물음으로 모든 것을 탕진한 나그네처럼

우물가에 오래 앉아 있기

아주 오래도록 허공을 응시하다가 저 푸른 한 점으로

쑥 들어가기

--시와 시학 (2018년 봄호)

 

 

 

 

음악 아닌 것으로 음악을 하는, 나인 것을 나 아닌 척 하는, 참으로 맹랑한 부류가 시인들이지요. 그림자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것들 매몰차게 뿌리쳤다가 필요하면 다시 소환하는 이기적인 감성의 소유자가 시인들이지요. 악다구니 치다가 슬그머니 뒷걸음치고, 설산과도 대적할 듯 큰소리치거나 신 따위 대수롭지 않게 자존의 콧대를 높이다가 한 순간 곤두박이기도 하는 정신적 룸펜이 시인들입니다. 시와 시인의 속성에 관한 맞춤한 답이 여기 있네요. 아, 나도 저런데! 하며 무릎을 치는 시인들이 이 시에게 계면쩍은 악수를 청할 것 같습니다. 저러한 천착은 시인의, 시에 대한 염결성과 지독한 열정이 밑바탕 되어야겠지요. 그런데 살짝 사기꾼이기도 한 시인들에게서 짙은 페이소스가 묻어나네요. 하필이면 가을날의 만가, 곁불 옆 낮술 탓인가요? 궁극의 질문 때문에 자신을 다 탕진하고 우물가에 앉아 있는 나그네가 우리의 자화상이라서 오늘은 허공을 오래 응시하겠습니다. /이정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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