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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겨울나기

 

추위가 누그러질 줄 모르고 이어진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지난 여름 더위를 봐서는 겨울이 춥지 않게 지나간다고 하지만 나는 알람이 울리면 이불을 더 끌어당기게 된다. 동지 전부터 이어지는 추위가 소한이 되도록 풀리지 않고 있으니 마트를 가는 일도 미루게 된다.

이렇게 추울 때면 사람도 겨울잠을 자고 싶다는 투정도 하고 겨울이 오기 전에 따뜻한 나라로 가서 봄이 오면 돌아오는 철새처럼 사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예전에는 아무리 추워도 밖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가 저물도록 이어졌다. 구슬치기, 자치기,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줄넘기를 하면서 엄마들이 밥 먹으라고 부를 때야 헤어졌다. 아이들 노는 소리가 사라진 길엔 차 소리만 휭하니 바람을 몰고 지나간다.

지금은 핸드폰 영상통화로 멀리 있는 사람과도 수시로 만나게 되지만 예전에는 철 따라 안부 편지를 했다. 그 시절의 편지는 거의 비슷한 틀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하 맹동지절에/ 존체 강령 하시옵고 / 가내 대소제절이 두루 평안하시온지요...’

어릴 때 할머니나 아버지께 오는 편지는 늘 이렇게 시작 되었다. 눈이 침침하신 할머니의 편지를 읽을 때면 무슨 의미도 모르고 그냥 뗄 곳이나 붙일 곳도 모르고 읽었다. 그래도 다 알아 들으시고 흐뭇한 얼굴로 사위들이나 친정 조카들의 문안편지에 흡족해 하시며 맹동지절을 지내셨다.

바로 요즈음이 그 맹동지절이다. 소한과 대한에서 입춘 사이 가장 추울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한 겨울이라는 뜻이다.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시기를 그렇게 표현했다.

그런데 올 겨울은 첫 추위를 심하게 하고 추위를 미리 당겨서하기에 춥지 않게 지나려다 했는데 이렇게 추위가 길게 갈 거라는 짐작은 하지 못하고 방심 한 것 같았다. 원래 겨울이면 골골대는 저질 체력이라 면역증진제를 꾸준히 복용한 결과 작년에는 감기를 앓지 않고 지나갔다.

올해도 자신 있게 독감예방주사도 맞지 않고 잘 지나가나 싶었는데 그만 복병을 만났다. 결국 버티다 못해 찾은 병원에서 독감검사까지 하게 되었다.

소 잃었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하겠기에 냉장고를 뒤쳐 겨울엔 잘 먹지 않고 미루던 배를 한 번에 꺼낸다. 모두 속을 파고 콩나물과 조청을 넣고 중탕을 한다. 세 식구가 둘러 앉아 하나씩 먹는다. 어머니께서는 따뜻해서 좋다, 어쩌면 이렇게 맛있니 딸네 식구도 해 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그릇 채로 들고 알뜰히 드신다.

단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남편은 억지로 먹으며 몇 번이나 수저를 놓는다. 결국 협박에 못 이겨 먹기는 먹지만 옆에다 막걸리 잔을 놓고 술 한 잔에 배숙 한 숟가락이 된다. 몸에 좋으라고 해 준 배숙을 술안주로 먹으면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고 한 마디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기가 막히다. 원래 알콜은 다른 성분과 달리 위에서 흡수가 되기 때문에 모든 약은 술과 함께 먹으면 빨리 흡수가 되고 고루고루 퍼지기 때문에 더 좋다고 하며 막걸리를 따르면서 머리 좋은 남편하고 사니 이런 구경도 한다고 하는데 말문이 막힌다.

남편은 결혼하면 남의 편이라더니 하더니 이번에는 친구에게 전화를 받고 감기가 심한 것 같은데 감기에 좋은 특제약 있으니 빨리 집으로 오라고 한다. 몇 숟가락 먹지도 않은 배숙은 남의 남편 차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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