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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얼음의 불

얼음의 불

                         /문설

얼음에 입술 데인 적 있다

얼음에도 불이 숨어 있었다니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불꽃은 북극에도 적도에도 있고

녹지 않는 사막에서 여우가 빙하를 주유한다

여우의 꼬리는 혀를 닮아

얼음의 둘레를 살살 더듬기도 하지만

얼음은 깨물어 먹는 동안의 즐거움

사각의 시원함 대신 사막의 서걱임을 동경한다

처음부터 즐거워지려는 속내는 아니었다

원시는 차갑고도 차가워 혀에서 뿔이 자란다

그것도 한때 불이었다 그 불에 데인 적 있다

모래 같은 믿음은 뒤통수를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말은 말을 낳고 화인(火印)이 깊게 박힌다

폭염이 지상에 오래 머물고 있다

불을 다스리는 건 남겨진 자의 몫이다

사물은 같은 형태로 오래 지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깨물어 먹은 건 얼음이 아니라

불이었다 입 안 가득 얼음을 돌리며 간신히

숨을 참는다

 

 

시인은 얼음에 입술을 데인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얼음의 그 맹렬한 차가움 속에 불이 숨어 있었다니, 나는 갑자기 찾아온 그 문장의 모순에 잠시 머뭇거렸다. 얼음과 불이란 양립할 수 없는 상극인데, 왜 시인은 얼음을 불에 대칭하는 것일까. 당연하지만, 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사유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하는 불일치의 일치다. 시인이 얼음에서 불을 발견했을 때처럼, 온몸을 서늘하게 만든 섬뜩함이 아니라, ‘불’이라는 그 뜨겁고 혹독한 비린내에 사로잡혔을 때처럼 나는 이 시가 만들어낸 놀라운 부딪침을 생각했다. 녹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사막은 빙하를 대칭하고, 원시는 ‘식어감’을 통해 흙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식물(혹은 ‘뿔’)을 대칭한다. 서로 작용함으로써 데칼코마니 같은 양립이 가능한 것. 때문에, 시인이 얼음에서 불을 찾아낸 이유는 바로 모든 사물에 내재한 대칭의 힘이다. /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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