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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미국 연방정부 셧다운과 폭력의 미학

 

 

 

최저임금의 단기간 대폭인상, 대학강사를 정규교원으로 인정하는 대학강사법,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 폭행사건의 공통점은?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있는 폭력성이 표출된 사건들이다. 화력발전소 사고로 숨진 하청업체 근로자, 양진호 회장과 송명빈 회장의 직원폭행, 네 살배기 친딸을 죽음으로 내몬 자녀학대, 모친을 학대했다는 호텔 사장 등 근래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만 해도 끝이 없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강사법의 경우 목적이 선한 것은 맞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누군가의 희생과 양보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양보를 우월한 지위와 권력으로 강제하는 것이라면 이 또한 폭력의 한 형태이다. 이런 유무형의 폭력성은 상대방을 대등한 존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심리에서 나온다. 상대방에게 일방적 양보를 강요하는 것은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근거 없는 우월감이다. 국제관계는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서로 상대방의 양보를 먼저 요구하는 김정은-트럼프의 관계도 결국은 같다. 상대방 또는 상대방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모든 인간관계는 폭력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예산안 대립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권력적 속성

미국의 트럼트 대통령과 야당인 민주당의 대립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요구하는 57억 달러의 국경장벽 예산이 포함되지 않으면 지출 법안에 서명할 수 없다고 버티고,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를 필두로 한 민주당은 장벽 예산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비상사태 선포를 통해 건설을 강행할 수 있다면서 양보를 요구하지만, 지난 달 22일부터 시작된 연방정부 셧다운(shutdown)은 이미 12일부로 역대 최장 기간을 기록했다. 80만 명의 연방정부 직원들이 급여를 못 받고, 세금환급 지연과 일부 공항폐쇄 등으로 피해자가 나왔다. 경제분석가들은 셧다운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1주일에 최소 20억달러(2조2,320억원)에 이른다고 경고한다. 단순히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북미-남북협상에도 악영향이 예상되며, 중국과의 무역분쟁과 더불어 세계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정치적 대립을 가져온 국경장벽 건설이 수많은 사람의 고통과 세계경제의 손해를 감내하면서까지 양보할 수 없는 문제인지 의아하다. 결국 대통령인 트럼프와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 사이에 스스로의 권력을 확인하고 싶은 의지의 표현이며, 상대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폭력성의 표출이라고 하겠다.



대화 없는 권력행사는 최악의 폭력일 수밖에 없어

우리는 다행히 극적 타협으로 예산안이 통과되어 미국과 같은 상황은 면했다. 물론 우리는 미국과 제도가 다르다. 예산안이 미정된 채 회계연도가 시작되면 헌법이나 법률에 따라 설치된 기관이나 시설의 유지, 법률상 지출의무 등은 차질 없이 지출되는 준예산제도를 갖고 있다. 따라서 공무원이 월급을 받지 못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우리도 법정처리시한을 넘긴 지 나흘 만에 야3당을 제외한 민주당과 한국당의 타협으로 통과되었고, 남북경협기금·일자리예산의 삭감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SOC예산 확대가 조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선거제도 합의를 촉구하며 손학규·이정미 대표가 단식에 들어갔고, 1월 중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처리를 양당으로부터 약속받았다. 하지만 별 진전이 없이 약속한 1월이 절반이나 지나갔다. 원내 양대 권력이 지킬 생각도 없는 약속을 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거짓 약속으로 예산정국과 단식정국을 끝냈다면 이것도 결국 폭력이다. 폭력이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하는 수단이라면, 권력의 거짓말은 심각한 폭력이다. 선거공약의 파기도 유권자의 의사를 억압하는 일종의 폭력이다. 폭력의 주체는 느낄 수 없겠지만 상대방에게는 공포와 도덕의 붕괴를 불러온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좋은 폭력은 없으며, 어떤 경우에도 나쁜 대화는 없다. 남과 북처럼 단절이 큰 사이도 자꾸 왕래하고 대화하면 가까워질 수 있다. 당장은 아니어도 미래를 위한 초석이 된다. 북한과도 대화를 하는 우리 사회에 왜 진심어린 대화가 실종되었을까? 국가권력이든 사회권력이든, 권력은 우월한 지위에서가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관계에서 창출된다. 그래야 상대방이 따르고, 그제서야 비로소 자기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권력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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