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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한하운

한번도 웃어 본 일이 없다.
한번도 울어 본 일이 없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
그러한 슬픔에 굳어 버린 나의 얼굴.

도대체 웃음이란 얼마나 가볍게 스쳐가는 시장기냐.
도대체 울음이란 얼마나 짓궂게 왔다가는 포만증이냐.

한때 나의 푸른 이마 밑
검은 눈썹 언저리에 매워 본 덧없음을 이어

오늘 꼭 가야 할 아무 데도 없는 낯선 이 길머리에
쩔룸 쩔룸 다섯 자보다 좀 더 큰 키로 나는 섰다

어쩌면 나의 키가 끄으는 나의 그림자는 이렇게도 우득히 웬 땅을 덮는 것이냐.
지나는 거리마다 쇼윈도 유리창마다 얼른 얼른 내가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 자기 성찰에서 출발했다면, 한하운 시인의 ‘자화상’은 자기 존재에 대한 일종의 환멸과 자기 부정에서 출발한다. 개인의 참혹한 현실 폭로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건강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존재의 뜨거운 열망이 아닐까.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을 되찾고 싶은 서러운 절규가 아닐까.한하운 시인(1919~1975)은 중도에 나병을 얻었다. 생의 연속적인 붕괴에 따른 상실감에 함몰되어, 삶에 대한 원망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텐데, 그는 자신의 병고가 앗아간 모든 것들을 견디며 시를 쓴다. 더군다나 훼손된 자아를 객관적 거리를 두고 형상화 할 수 있다는 것은, 상처받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굳은 의지에서 가능해진다. 이것은 자기구원에 대한 지극한 실천이고, 생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다. /박소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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