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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기억의 온도

 

 

 

기억의 온도

/한지혜

나는 죽었던 너의 기억 아래
눈마저 내리는 오랜 표면은 어둠 너의 발 밑
나의 표면은 너의 두터움
나는 얼음과 부딪던 하얀 살갗
밖은 눈이 오며 시야가 가려진다
나는 창에서 어둠을 보고 있다

두 손을 꼭 잡고 걸었던 거 기억나
어제 그런 일 있었으니까
먹으라고 샀어 달콤한 걸로
몸이 감지기였던 거 알아

물속이라는 나의 기억도 너의 생각
주먹을 펴 닿는 세상이 있다

물의 파동을 느끼는 나는 어름 아래 산다
감아 눕힌 테이프를 일으켜 말의 조각을 줍는 너의 시각으로
네가 끼어들어와 문을 열어 준
포근한 세상
나는 공간보다 입체를 알게 되었다

 

 

 

 

특이하게 이 시에서의 주체는 모호하지만, 모호한 채로 ‘나’는 끊임없이 산출된다. 나는 “죽었던 너의 기억 아래”에서, “너의 두터움”으로 미끄러지며, “얼음과 부딪던 하얀 살갗”으로 향한다. 화자가 바라보는 시선의 경계는 계속 이동하고 화자의 좌표는 생성되자마자 소진되기를 반복한다. 마치 폭설이 내리는 도시의 모호함처럼, 화자는 스스로를 3인칭이라는 익명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사태를 돌려세우기 위해 ‘기억’을 활용한다. 그 기억은 마치 커튼처럼 시야를 가로막고 절단하며 내부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다시 배치한다. 배치의 재구성은 필연적으로 시각의 단절을 불러오지만, 이를 통해 의미는 재구성된다. 이것은 본다는 것의 또 다른 ‘봄’이고, 듣는다는 것의 또 다른 ‘들음’이다. “나는 공간보다 입체를 알게 되었다”는 문장은 그러므로, 배치의 가장 단호한 성찰이다./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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