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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세월이 야속하다. 어언 내 나이 지천명을 넘어섰으니, 지나가는 개도 안 돌아본다는 나이다. 그러니 속절없는 아줌마다.

하지만 세상은 지금 아줌마들의 시대다. 그들의 기세가 등등하다. 내 나이쯤 되면 남편들은 어느새 퇴직을 하고 슬슬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산다. 젊어 한때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살았던 아줌마들이 이제는 살판이 났다. 바야흐로 세상은 ‘줌마 시대’로 접어들었다. 나도 그 중의 하나다.

처녀 시절 나의 꿈은 어떠했던가? 나는 이처럼 너절한 아줌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스스로 나 자신을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내 인생도 특별한 인생이 되리라고 상상했다. 나는 남들처럼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가난과 곤경이 나만은 용케 비켜 가리라고 굳게 믿었다. 내키기만 하면 백화점을 드나들며 명품 가방에 유행에 맞춘 유명 브랜드 옷을 입고, 인천공항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귀부인이 되고 싶었다.

높은 빌딩의 호화로운 카페에서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나폴레옹 코냑을 홀짝거릴 줄 알았는데, 나는 지금 골목길 족발 집에서 주책없이 음식물을 우물거리고 앉았다. 값비싼 프랑스 산 와인은커녕 딸아이와 맥주 한 잔을 나눌 때도 장바구니 사정을 헤아린다.

나는 으까뻔적한 스포츠카에 몸을 싣고 내가 사고 싶은 것은 언제든지 사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은 공주처럼 골라 입을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나에겐 호화찬란한 외제 승용차는커녕 굴러가는 똥차 한 대도 없다. ‘에르메스’ 버킨백을 들고 ‘루이비통’ 구두에 ‘막스마라’ 양장을 갖춰 입고 거리를 누비기는커녕 나는 지금 10여 년 전에 생일 선물로 얻어 입은 유행이 지난 허접스레한 외투를 걸치고 다닌다.

나는 마음에 맞는 나의 백마 탄 남자와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고담준론을 나누며 우아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내 남편은 현장에서 물러난, 할 일이 없어 그저 내 눈치나 살피는 고개 숙인 남자다. 고담준론은 커녕 주고받는 말이라곤 그저 일상에 찌든 그렇고 그런 말들뿐이다.

나야말로 요새 유행하는 ‘외도녀’(외로운 도시의 여자)다.

젊은 시절, 나는 결코 이런 후진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들을 돌보면서 세월은 점령군처럼 한꺼번에 나를 줌마로 만들어놓았다. 아직도 내가 젊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세월은 느닷없이 나를 줌마의 울타리 속으로 몰아넣어 버렸다.

높은 빌딩 속에서 호사를 누리며 도시의 야경을 감상하기는커녕 초라한 집 안에 갇혀 주야로 빨래하고 청소하는 ‘밥순이’로 족쇄를 달았다.

시시때때로 그런 내가 슬프다. 슬프지만 그게 내 앞에 닥친 나의 현실이란 걸 느끼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쏜살같은 세월은 비호같이 달아나고, 허황한 머릿속에 나의 진면목을 불어넣어 주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가 않았고 팽팽하던 내 얼굴의 피부에도 어느새 세월의 주름이 앉기 시작했다. 더불어 사람의 삶이, 찌든 내 이마의 주름살처럼 가파르고도 고랑지다는 걸 절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서서히 한 가지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야말로 헐어빠진 이 시대의 줌마라는 것을…. 그래, 외롭고 쓸쓸한 줌마라는 것을….

줌마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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