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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백로가 있는 밤

 

 

 

백로가 있는 밤

/권애숙

별의 이름을 숨겨놓고
가파른 언덕에 기대 앉아 너와 나의 저녁이
먼 능선을 흔든다

지붕도 없이 곤한 골짜기
새로운 어둠의 편대들 몰려온다

부리가 많은 밤은 이렇게
번져가고 뜨겁게
깊어가는 줄도 모른 채
빛나는 줄도 모른 채

 

 

 

 

 

 

 

 

 

시인은 어느 ‘가파른 언덕’에서 멈춘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들과 저녁의 소슬한 냄새, 그리고 겨드랑이를 간질이는 서늘한 바람이 전부다. 일정한 간격으로 점멸하는 희미한 불빛을 보면서 그는 별의 이름을 하나씩 기억하는데, 이름을 부를 때마다 부재하는 당신은 소스라친다. ‘이름’의 반영된 기하학적 무늬 때문이 아니라, 이름을 부를수록 별의 형상은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별의 이름을 숨겨 놓는 것은 당연한 일. 먼 능선에서 숲이 흔들리며 밤을 몰고 온다. 그렇게, 시인은 “지붕도 없이 곤한 골짜기”에 앉아 있다. 어둠이 편대를 이루며 능선을 타고 쏟아진다. 별과 더불어, 혹은 그 영원과도 같은 이름들과 더불어 시인은 ‘당신’을 추억한다. 돌을 꾹꾹 눌러 밟으며 다가오는, 당신의 파편들ㅡ이것은 시인만이 느낄 수 있는 밤의 상징에 몸을 맡기는 행위이다. 무수한 인연의 겹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기억의 단층이다. 거기에 ‘당신’은 있고 또한 없다. 때문에 “부리가 많은 밤은 이렇게 / 번져가고 뜨겁게 / 깊어가는 줄도 모른 채 / 빛나는 줄도 모른 채”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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