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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왕실의 비밀정원에서 정조를 만나다

 

 

 

미세먼지가 유독 많은 1월이다. 하지만 겨울의 냄새가 조금씩 멀어지고 멀리서 봄의 향기가 스멀스멀 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새해가 시작되면 정조임금은 전국 팔도에 권농윤음을 내렸다. 농한기의 게으름을 벗어던지고 부지런히 움직여 농사를 준비해 만백성이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 것이다. 오늘은 그 정조의 마음을 마주하고 싶다. 그래서 정조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창덕궁의 후원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려놓은 옛 지도 그림 동궐도와 함께 하면 더욱 새로운 창덕궁 후원을 만날 수 있다.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정조 임금의 이야기가 담긴 주합루이다. 주합루는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부용지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 네모난 연못에 동그란 작은 섬이 자리하고, 한켠에는 십자(十)모양의 부용정이 소담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맞은편에는 한눈에 시선을 잡아끄는 2층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건물의 2층이 주합루이고, 1층은 규장각이다.

1층 규장각은 왕실 도서를 보관하던 곳이며, 2층 주합루는 열람실에 해당이 된다. 이 규장각은 정조 즉위년에 건립되었다. 단순히 왕실 도서관으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자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함께 했다.

검서청의 검서관이었던 이덕무는 규장각에서의 아름다움을 시로 남겼는데 ‘규장각에서의 선비들 시험’을 팔경 중 하나로 꼽았다. 이 규장각을 가기 위해서는 부용지에서 어수문을 통과해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한다. 어수문은 임금이 사용한 문이며 좌우로 신하들이 사용한 작은 문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어수(魚水)’는 임금과 신하가 물과 물고기처럼 서로 긴밀하게 의기투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수문 좌우로 아주 긴 취병이 이어져 있다. 취병은 푸른 나무로 만든 울타리이다. 공간을 구분하는 담의 역할과 시선을 차단하는 가림막의 역할을 하는 독특한 나무병풍이다. 이 취병은 주합루 조성시 만들어졌다. 정조 임금은 이 취병을 대단히 좋아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내에도 취병을 설치했으며 이 취병을 수리하고 유지하는 데 매년 40냥 정도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창덕궁과 창덕궁을 그린 동궐도에서도 옥류천과 중희당 등에서 취병이 등장하는데 주합루의 취병은 동궐도에서 가장 길다.

주합루 서쪽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책의 향기가 있는 집’이라는 의미의 서향각이 눈에 띈다. 서향각은 주합루의 부속건물로 매년 4개월에 한번씩 도서를 포쇄하던 곳이다. 포쇄는 책을 햇빛과 바람에 쐬는 작업이다. 그럼으로써 축축해진 책의 습기를 제거하고 책의 부식과 해충을 방지한다.

서향각에서의 포쇄작업은 매번 있는 것이 아니어서 평상시에는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도 했다.

정조임금은 이 곳에 양잠소를 설치하였고, 서향각에서는 왕비가 친잠례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 흔적들이 서향각에는 현판으로 남아있는데 ‘친잠권민(親蠶勸民)’과 ‘어친잠실(御親蠶室)’이다. 친잠권민은 순정효황후의 친필로 전해지고 있으며 어친잠실은 서향각 앞 기둥에 세로로 자리해 있다. 어친잠실은 ‘왕족이 친히 누에를 치는 방’이라는 의미이다.

주합루의 동쪽은 천석정이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부용지에서 바라보면 잘 보이지는 않는다. 겨울에 가면 나뭇잎이 없어 훨씬 더 잘 보이는 장점이 있다. 이럴 때 동궐도를 참고하면 훨씬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ㄱ’자 형태의 누마루 건물인 이 곳은 학자들이 독서를 즐기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조임금의 손자이신 효명세자가 학문을 연마하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왕실의 비밀정원으로 알려진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용지에 규장각과 주합루를 설치한 정조임금님은 이 곳에서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통해 나라의 비젼을 세우고 그 비젼을 실행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아직은 겨울바람이 매섭지만 정조임금님의 발자취를 마주하고 나니 시린 계절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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