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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가는 길

/신경림

가볍게 걸어가고 싶다, 석양 비낀 산길을.

땅거미 속에 긴 그림자를 묻으면서.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콧노래 부르는 것도 좋을 게다.

지나고 보면 한결같이 빛 바랜 수채화 같은 것,

거리를 메우고 도시에 넘치던 함성도,

물러서지 않으리라 굳게 잡았던 손들도.

모두가 살갗에 묻은 가벼운 티끌 같은 것,

수백 밤을 눈물로 새운 아픔도,

가슴에 피로 새긴 증오도.

가볍게 걸어가고 싶다, 그것들 모두

땅거미 속에 묻으면서.

내가 스쳐온 모든 것들을 묻으면서,

마침내 나 스스로 그 속에 묻히면서,

집으로 가는 석양 비낀 산길을.

-신경림 시집 ‘뿔’

 

 

 

 

모든 것은 한곳으로 집결된다. 밖으로 나돌던 몸과 마음이 한곳으로 향하고 그 한곳에 들어가 몸을 눕힌다. 그리하여 우리는 외부에서 오는 모든 압력을 이겨내며 살아간다. 시는 이러한 우리의 생활에 진정한 힘이 되어주는 곳에 대한 소중함을 말한다. 지나고 보면 모든 일은 한결같이 빛바랜 수채화 같은 것이다. 거리를 메우고 도시의 넘치던 함성도. 물러서지 않으리라 굳게 잡았던 손들도. 모두가 살갗에 묻은 가벼운 티끌 같은 것이다. 그리고 수백 밤을 눈물로 새운 아픔도. 가슴에 피로 새긴 증오도. 땅거미 속에 묻으면 나 또한 그 속에 묻히면서 모든 길은 석양이 비낀 산길이 되는 것이다.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콧노래 부르며 가는 그림자 없는 길. 시인은 그렇게 걸어가고 싶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벼워지고 싶다. 집이란 그런 곳이다. 마음 둘 곳 없던 내가 안식을 찾는, 우리의 영원한 거처인 것이다./서정임 시인

문화 가 - 00224<일간> 2002년 6월 15일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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