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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마티스의 오달리스크 시리즈

 

 

 

프랑스 화가들에게 남부지방은 도피처이자 꿈과 이상향을 일으키는 곳으로 인식돼 왔다. 화가들은 파리에서 지내면서 지친 마음을 쉬게 하고자 남부 지방을 찾곤 했는데, 여행지에서 뜻밖의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예술 세계의 큰 전환점을 얻기도 했다.

세잔은 엑상프로방스에서 자랐다. 파리에서도 오래 활동을 해왔지만 위대한 업적은 고향인 엑상프로방스에 다시 정착한 이후에 달성이 되었다. 고흐 역시 생애의 마지막 몇 년을 아를에서 보내며 노란색이 찬연하게 빛나는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다. 화가들은 남부를 여행하며 지치고 상처 받은 마음에 안정을 찾았고, 파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온화한 공기와 따사로운 햇빛 속에서 새로운 색채 자극을 받았다. 때론 지중해를 바라보며 이국적인 세계를 꿈꾸기도 하였다.

마티스가 니스 여행 중에 얻었던 감흥도 그것이다. 그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니스에서 남겼던 종적은 매우 인상적인데, 그는 이곳에서 화가가 지닌 모든 관능을 자유롭게 펼쳐보였던 것이다. 파리에서 체류하던 그가 갑자기 니스를 방문했던 것은 쉼이 필요해서다. 그의 건강은 쇠약했고, 화가로서의 자아도 위축됐으며, 부인과도 이별한 후라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1918년에 그린 ‘자화상’은 그가 현재 처하고 있는 위기가 그를 얼마나 숨 막히게 하고 있는지를 가늠케 한다.

경직된 정장 차림의 화가는 아무 기쁨도 감흥도 없이 작업을 하고 있다.

자화상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구도는 화가가 처한 갑갑한 처지를 상징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의 앞에는 여행 가방이 놓여 있어 언제라도 떠날 채비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즈음 그가 그렸던 그림들은 대부분 어두운 색채의 다소 딱딱한 구도의 작품들이다. 피카소와 교유하며 입체주의를 연구하며 나온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니스에 정착하고 난 뒤 그의 작품은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예전의 화려한 색감을 되찾았고, 구불구불하고 자연스러운 선도 마음껏 구사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젊고 아름다운 모델들을 많이 그렸다는 점이다. 미모의 여성들은 화가의 잠재된 관능과 욕구를 마음껏 자극하며 유연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때론 동양적인 의상이나 소품을 착용하기도 했다.

마티스의 오달리스크 작품들은 니스에서 머무르는 동안 젊고 아름다운 모델들을 데리고 완성한 작품들을 말한다.

니스에서 그린 작품들이 세상에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때 현대 미술의 기수였던 그가 그곳에서 왜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포즈를 취한 모델을 그리는 건 전혀 현대적이지도, 사실적이지도 않았고, 게다가 예전에나 행했던 방식이다. 왜 현대미술의 선구자 역할을 저버리고 근대 이전의 방식으로 회귀했는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벌거벗은 미모의 모델들을 데리고 마티스는 화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어수룩하게 알고 있는 동방의 이미지를 여성의 누드와 뒤섞어 버리는 것은 여성과 동방 양쪽 모두를 비하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천재 피카소만큼은 마티스의 의도를 이해했다. 호시탐탐 마티스의 작업을 엿보고 있었던 피카소는 마티스가 추구하는 관능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고, 곧 그 역시 폭발할 것 같은 관능적 에너지를 화폭에 담게 될 것이었다.

물론 피카소를 날강도라고 부르며 경계하고 있었던 마티스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피카소의 표현은 마티스의 그것보다 조금 더 노골적이었다.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 생산성을 극도로 강조하는 표현이 캔버스에 등장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티스는 중용을 지켰다. 비록 그의 오달리스크 시리즈는 시대착오적이며, 원초적이라며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샀지만 예술이 삶의 안식이자 쉼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이 작품들 속에서 잘 나타난다.

오달리스크 시리즈를 통해 작가는 타인의 시선과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기쁨을 찾았을 것이다. 때론 여성의 신체는 관능적으로만 표현되지 않았다.

1935년 작 ‘핑크 누드’를 살펴보자. 경쾌한 선으로만 구성된 매우 평평한 형태의 여인의 신체는 마티스만의 해석으로 완성된 도형이었고, 관객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에 충분히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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