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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은혜갚는 이웃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완충의 시기쯤에는 하는 일이 있다.

묵은 먼지를 털어내는 청소를 해서 공간을 비우거나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 중에 관계가 소원해서 어떻게 알게 된 사람인지 기억조차나지 않는 낯선 이름을 주소록에서 지우며 마음의 용량 관리를 하게 된다.

새해를 맞이하려는 중요한 의식처럼 해 오던 일이라 올해도 확인하니 고마운 이름과 서운한 이름 언젠가는 연락이 될 것도 같은 희미한 이름, 잠시 인연이 닿아 전화번호를 나눈적은 있었으나 소소한 일상의 안부를 물을 만큼 서로의 근황을 공감하기 어려운 이름들이 차례로 지나간다.

그러다 지속될 관계의 사람이 아닐거면 바람에 흩날릴 먼지처럼 지우게 된다. 서로의 목소리로도 안부가 되어 관계를 이끌 수 있어야 약한 인연이나마 이을 수 있는데 평소 그다지 부지런하지 못하여 좋은 사람도 곁에 머물게 하지 못한 채 놓치는 일이 부지기수다.

휴대폰 가득 채우고 있는 밴드나 카톡에서 다수의 근황을 보며 그나마 적은 궁금함조차 해결되고 나면 개인적인 인연을 이어 갈 수 있는 방법은 날이 갈수록 서투르게 된다.

다정한 사람이 보기 좋다. 사람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관리를 잘할 마음밭이 마련되어 있어 보여서다.

감정이 마른 나로서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의 다름을 항변해 보고 싶지만 다정함이 우선의 가치이기에 그렇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소심하게 그 말은 삼킨다. 우길 수 없는 개인의 가치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정해보려 애쓰는 것은 순간에 지나지 않고 금새 본래의 무심한 나로 되돌아오니 애쓰는 것이 오히려 허위로 보이기만 한다. 그래서 나름의 무정(無情)을 대체할 선(善)으로 ‘합리적인 행동’을 장착하게 되었다. 주변인에게 선(善)을 먼저 행할 주변머리가 없으니 받은 은혜는 잊지않고 즉시 갚는 일이다. 그것은 정(情)의 이치로 해석하기 전 당연한 정(正)의 합리성이다. 다정도 넘치면 화(禍)가 되는 경우를 굳이 위안하며 다정하지 않고도 최소 욕은 면할 수 있는 잔꾀다.

우리는 작게는 가족에서 시작하여 사회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어가며 은혜를 입기도 하고 베풀 기도 한다. 은혜란 것이 주기도 어렵고 받으면 더욱 어렵다.

전래동화에 사람과 동물사이에 은혜를 입고 그 은혜를 목숨까지 들여서 갚는 이야기를 종종 만날 수 있다.

흥부의 선행에 보답한 제비나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뻔한 까치를 구해준 보답으로 남편 구렁이의 원수를 갚고자 한 아내 구렁이로부터 선비의 목숨을 구한 까치, 산에 갔다가 만난 호랑이로부터 목숨을 구하려 예전에 집을 나간 형님이라는 기지로 거짓말하고 돌아 온 나무꾼의 집에 잡은 산짐승을 두고가며 어머니를 봉양하다 연로하여 돌아가신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피골이 상접한 채 죽은 호랑이의 보은 등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동물의 보은도 이토록 넘치는데 사람도 스스로 입은 은혜를 알기도 해야겠거니와 갚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 여긴다.

며칠전 사람이 은혜를 어떻게 해석할 수도 있는가의 한 예를 뉴스에서 보았다. 형편이 어려운 친구를 자신의 집에서 기거하게하고 매달 약간의 용돈까지 챙겨주고 있었는데 병원에 입원하느라 챙기지 못하자 자신을 무시하느냐며 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감정적 진행의 과정이 어쩌다 그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는 알길 없지만 결과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선의를 잘못 해석한 그는 자신의 지나친 감정으로 황금알을 낳던 거위의 배를 가르고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한다. 최소한의 받은 은혜만이라도 기억했다면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나쁜 상황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라 짐작한다.

은혜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대안을 이야기한다면 ‘합리적 감정의 결제’를 제안한다.

많은 낯선 이름을 저장해 놓고 용량과부하를 걱정하지 말고 비우고 정리하되 그로부터 받은 은혜를 놓친 적은 없는지 주소록에서 지우기 전에 기억해 내어 은혜갚는 이웃이 되어 새로운 한해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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