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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박제영



벽과 벽, 골목과 골목, 허공과 허공, 막다른 사이에는 언제나 그가 서 있다



그는 빛과 예언이며 또한 어둠과 상처였으니, 모든 기도는 그를 통해 전송되었지만 그로 인해 혼선도 빚어졌다 일용할 양식과 일자리를 구해 주기도 하였지만 장기매매와 성매매를 주선하기도 했다 길 잃은 아이를 찾아주기도 하였지만 아이의 가출을 부추기기도 했다



취한 자나 떠돌이 개가 오줌을 갈길 수도 있겠지만, 그는 여전히 막다른 곳에서 막다른 자에게 신처럼 우뚝 서 있는 것이다

- 계간‘문학마당’ / 2017년 가을호

 

 

전선이나 통신선을 잇기 위한 기둥들이, 어둠과 어둠사이에 서 있다. 그들은 ‘빛’이 필요한 모든 곳, ‘막다른 사이에’위치한다. ‘벽과 벽, 골목과 골목, 허공과 허공’사이에서, 전봇대는 ‘빛과 예언이며 또한 어둠과 상처’로써 신적인 대상이 된다. 숭고미나 고결함의 유일한 대상이 아니라, 흔하게 볼 수 있는 친근감으로 복수화 된다. 그들은 빛이면서 동시에 어둠을 거느림으로써, 그를 통한 기도는 늘 ‘혼선’을 빚게 한다. 그들은 “일용할 양식과 일자리를 구해 주기도 하였지만 장기매매와 성매매를 주선하기도 했다/길 잃은 아이를 찾아주기도 했지만 아이의 가출을 부추기기도 했다” 전깃줄이 서로 엮여 있는 기둥들, 도시의 길목이나 농촌들녘에서 사계절을 지내는 수많은 수직들, 그들은 구원이 고통없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혼선’으로 응징한다. 빛이 필요한 자는 두려움을 갖게 되고, 빛은 서로 엮여 있는 전깃줄을 잘 통과해야 볼 수 있는 대상임을 강조한다. 신의 양면성은 그것(소통)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충일함에도 자기 통찰이 필요함을 충고한다. 전봇대는 한편 “취한 자나 떠돌이 개가 오줌을 갈길 수” 있는 신체를 허락하며, “막다른 곳에서 막다른 자에게 신처럼 우뚝/서 있는 것이다” 즉, 신적 대상이 우리의 수치를 떠안음을 밝힌다./ 박소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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