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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달을 보다

 

무심히 올려다 본 하늘에 달이 가득하다. 슈퍼 문이다. 음력으로 따지만 개띠해의 마지막 보름달이다.

혹여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지 않을까 카메라렌즈를 당겨보기도 한다. 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래보는 것은 삶에 대한 기대감이리라.

달이 나를 따라온다. 큰길을 나서면 큰길로 따라오고 골목으로 접어들면 골목을 밝히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하는 달이 있어 퇴근길이 가볍다. 달을 향해 이런저런 마음을 열어본다.

오늘하루 속상했던 일이며 사는 일이 버겁다고 투정도 부려본다. 설날이 다가오니 돈 쓸 일은 많은데 출근해봐야 허탕 치는 날이 수두룩하고 그렇다고 매장을 접을 수도 없는데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달을 닦달해본다. 아니 좀 수월하게 해 달라고 애원한다. 아니다. 부탁만 한 것은 아니다.

가족들 건강하니 고맙고 각자 자기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가고 있으니 그만하면 됐다고 감사도 했다. 달은 조금 민망한지 구름 속으로 숨었다 나오길 거듭하며 내 등을 토닥여주는 듯 했다.

우리는 삶이라는 정글 속을 뚫고 나가면서 순간순간 닥쳐오는 고행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마음 기댈 곳을 찾는다. 대상이 가족일 수도 있고 종교일 수도 있고 자연이거나 본인 자신일 수도 있다. 믿음을 통해서 위안을 얻을 수 있고 의지를 굳힐 수 있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어머니는 뒤란 장독대 옆에 있는 소나무를 섬겼다. 100년은 족히 넘었을 소나무는 반쯤 누운 와송 이었다. 소나무 아래 돌을 쌓아 제단을 만들고 아침마다 정화수를 갈아놓으며 두 손을 모으셨다. 가족들 무해 무탈을 소원했을 것이고 어렵게 얻은 아들을 위해 기도했을 것이며 술 좋아하는 아버지의 건강을 빌었을 것이다.

집안에 큰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기도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소나무아래서 울거나 웃으며 삶의 고단함을 풀어내곤 하셨다. 정월대보름이나 추수가 끝나면 떡시루를 쪄서 소나무아래 놓고 절을 하고 접시에 떡을 담아 집 안 이곳저곳에 먼저 놓았다 거둬들인 후에 우리들 차지가 됐다.

동짓날에는 팥물을 담벼락에 뿌리며 집안이 편하길 기원했다. 어머니의 신앙은 자연이었다. 생노병사의 근원이 자연에 있으며 자연이 허락해준 범주에서 살아야 탈 없이 살 수 있음을 깨우친 것이다. 이렇듯 마음내줄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보름달 보고 소원을 빌거나 별자리에 탄생의 의미를 담아보는 일 등 많은 것을 자연에 기대어 살게 된다. 별자리에 자신의 행운을 맡겨보기도 하고 달의 기울기를 보면서 농경을 준비하기도 한다.

달의 날짜는 농경의 날짜인 셈이다. 농경의 날짜가 절기로 이루어지듯 음력 12월 15일이 24절기 중 대한이다. 겨울의 마지막 절기인 대한이 지나면 15일 후 입춘이다. 저 큰 달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겨울과 봄을 잇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나무는 까치발을 들기 시작할 것이고 얼었던 땅도 서서히 움직여 잠들었던 씨앗을 깨우며 봄을 향한 준비를 서둘 것이다.

초승달이 서서히 차올라 만월이 되고 그 만월이 조금씩 자리를 비워 그믐달이 되어야 다시 새달이 시작하는 것처럼 마음과 마음을 잇대고 살다보면 좋은 날도 기쁜 날도 올 것이다. 오랜만에 달과 소통하며 걷는 길이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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