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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왕실의 비밀정원, 창덕궁 후원을 가다 (1)

 

 

 

창덕궁의 후원하면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부용지와 부용정이다. 네모난 모양의 부용지에는 남쪽에 부용정, 북쪽으로는 주합루, 동쪽에는 영화당, 서쪽으로는 사정기비각이 자리하고 있다. 부용지의 한 가운데는 동그란 섬 하나가 떠 있다.

‘부용(芙蓉)’이란 ‘연꽃’을 말한다. 이 연못에는 본래 연꽃이 무성했다고 전해진다. 비록 겨울이라 연꽃 한송이 만날 수 없는 부용지이지만 연꽃이 가득한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멋진 부용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부용지 남쪽에 부용정이 자리하고 있는데 십자모양이다. 자그마한 정자이지만 한껏 멋스러움을 자랑한다.

정자 안의 불발기창도 그 멋스러움에 한 몫을 더한다. 정자에서 부용지와 가운데 섬, 그리고 건너편 주합루를 바라보는 경관이 아름답다. 정조임금께서 원래 있던 택수재를 고쳐지으면서 이름을 부용정을 바꿨다.

동쪽의 영화당은 처음 지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광해군 때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지금 있는 건물은 당시의 것이 아니라 숙종 때 재건한 건물이다. 영화당은 앞 마당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이 앞마당이 바로 춘당대다. 이 춘당대에서는 왕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과거시험이 치러지기도 했다.

춘향전 속의 이몽룡이 과거급제를 했던 곳도 바로 춘당대다. 현재 춘당대 앞으로 창경궁과 경계를 나누는 담장이 자리하고 담장 너머로 대온실이 보인다. 지금이야 이렇게 창덕궁과 창경궁으로 나눠져 있지만 당시에는 경계가 나눠져 있지 않아 춘당대는 창경궁의 춘당지와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됐다. 이 곳에서 시험을 치루는 이몽룡과 조선의 선비를 상상해보자니 당시의 긴장감과 설레임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다.

서쪽의 사정기비각은 세조 때 팠다는 네 개의 우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세조는 왕자들을 시켜 창덕궁 안에 우물을 찾아 파도록 했는데 이 때 부용지에 4개의 우물이 만들어졌다. 세조는 이 네 개의 우물에 ‘마니·파려·유리·옥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2개의 우물은 사라지고 2개만 남았다.

숙종임금께서 이 두 개의 우물을 새로 정비하고 세조 때 만들어진 네 개의 우물에 대한 내용과 정비한 내용을 기념하여 비를 세웠다. 이 비가 바로 사정기비각이다. 실제로 2008년에 숙종 때 정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 2기가 발견됐고 지금은 잘 복원된 채 사정기비각과 주합루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부용지를 지나 불로문으로 자리를 옮겨보자. 불로문을 지나면 무병장수한다는 의미이다. 당연히 임금님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했다. 이 불로문은 한 장의 돌을 깎아 만든 돌문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문이다. 이 불로문을 서너 차례 드나들면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호기심이 작동한다.

불로문 왼쪽으로는 금마문이 자리한다. 금마문을 통해 들어가면 돌축대 위에 소담스러운 한옥 2채가 자리하고 있다. ‘기오헌’과 운림거이다. 기오헌은 책을 보관하고 독서하던 곳이다.

불로문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연못이 있고 연못가에 자리한 애련정을 마주하게 된다. 『궁궐지』에는 ‘숙종 18년에 연못 가운데 섬을 쌓아 그 곳에서 애련정을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지금 애련정은 연못가에 자리하고 있고 동궐도에도 애련정은 연못중앙이 아닌 연못가에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애련’이라는 이름은 ‘연꽃을 사랑한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면 부용지와 부용정도 그렇고 이 애련정도 그렇고 궁궐에 살았던 조선의 임금님들과 당시의 사람들은 연꽃을 참 사랑했으며 생활 가까이 두고자 했음을 느낀다.

이들에게 연꽃은 어떤 의미였을까? 연꽃은 진흙 속에서 나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고고하게 피어나는 꽃으로 ‘군자의 꽃’으로 여겼다. 연꽃을 생활가까이에 두고 스스로 청빈해지고자 하는 마음의 다스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애련정을 마주하며 이 시대의 연꽃은 어디에 심어야 좋을지 함께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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