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정윤희의 미술이야기]마티스가 설계한 로사리오 성당

 

1941년 일흔을 넘긴 앙리 마티스에게 십이지장암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이 내려졌고, 그는 주치에게 간절히 간구했다. 하던 작품들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단 몇 년 만이라도 더 살게 해달라고 말이다.

마티스의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졌고, 그는 그의 인생에서 다시 한 번 절정을 쓸 수 있게 됐다. 물론 그의 온몸은 성치 않았고 작업에 많은 제약이 따랐다. 이젤 앞에서는 서 있는 것도, 앉아있는 것도 불가능했고 작업을 하는 시간보다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삶으로 되돌아온 화가의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상쾌했었는지, 그때부터 그가 발표했던 작품들은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1946년작 ‘폴리네시아의 하늘’, ‘폴리네시아의 바다’는 남태평양의 푸른 바다와 하늘을 그린 한 쌍의 작품들이다. 비록 당시 몸이 성치 않아 여행은 불가능했지만, 10년 전 방문했던 그곳의 인상을, 그가 머물고 있던 니스에 넘실거리고 있는 지중해 빛깔의 도움을 받아 기억으로 더듬었다.

어느 빛이 하늘빛이고 어느 빛이 바다 빛인지 모를 두 가지의 푸른색 조각이 넓게 펼쳐진 모자이크를 배경으로 수많은 생명들이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워 실제 바닷가의 부드러운 바람과 파도가 관객들에게 직접 전해지는 것만 같다.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가 되는 대형작품이니 감동도 그만큼 크다. 비록 왕년의 마티스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지극히 단순한 형태였지만 관객들은 노년의 화가가 새롭게 선사하는 감동에 박수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화가는 이젤 앞에 앉아 있을 수 없었을 뿐더러 붓을 오래들고 있을 기력도 없었지만, 다행이 그에게 적합한 작업 방법이 한 가지 남아있었다. 몇 년 전부터 해왔던, 과슈로 칠한 캔버스를 가위로 오려서 붙이는 방식이었다.

이와 같은 과정으로 완성한 작품들을 일컬어 컷 아웃(Cut-Out)이라고 하며, ‘폴리네시아의 하늘’과 ‘폴리네시아의 바다’도 이에 해당된다. 가위질은 그에게 붓질과는 다른 새로운 손맛을 전해줬고, 화가는 이 작업방식을 통해 큰 만족감을 얻고 있었다. 게다가 색종이 조각들을 이리저리 자유롭게 배치하다보니 보다 과감하고 시원시원한 색의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노년의 화가가 재량을 펼칠 새로운 기회는 한 번 더 찾아왔다. 로사리오 성당 건축 설계 의뢰를 받았던 것이다.

이 작업은 십이지장암 수술 후 마티스를 극진히 돌보며 작업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자크 마리 수녀와 다시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기회였기에 그는 흔쾌히 이를 수락했다. 뿐만 아니라, 성당에 설치될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은 그가 꿈꿔왔던 빛과 색채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연출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었다.

물론 그가 성당 건축 작업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 동료 화가들은 의아해 했다. 피카소는 마티스가에게 “차라리 시장을 설계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충고했다 한다. 동료 화가들이 그러한 반응을 보이기도 할 만했던 것이, 현대 작가들에게는 종교화나 종교장식이 구시대적인 관습이자 상징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사리오 성당 작업을 맡기로 한 마티스의 결정에는 한 치 흔들림이 없었다.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화가에게 주변의 평판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작품이란 자고로 보는 이에게 위안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이 소중한 기회를 그는 놓칠 수 없었다.

로사리오 건축을 의뢰한 마리 알랭 꾸뛰리에 신부는 평소 현대 화가들의 재능을 매우 높이 샀던 인물이었으며, 성당 건축 과정에서 마티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주었고, 마티스에게 스테인드글라스 기법을 전수해 줄 수 있는 이였다.

완공된 성당 예배당의 한쪽 벽에는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다시 한 푸른 물결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노란 빛과 함께였다. 그 빛깔들은 고정된 빛깔들이 아니었다. 지중해의 변화무쌍한 햇살을 받아 너울거리는 빛깔들이었다. 벽화는 스테인드글라스의 효과와 조화를 이루도록 단순한 드로잉으로 채워졌다. 만년의 화가가 십자가의 의미와 성경의 내용을 묵상하며 온 힘을 다해 완성한 작업이다.

평안과 위로가 충만한 공간을 바라보며 그는 이제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혹 더 큰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공간이 주는 평안함을 생각해보면, 그의 심정은 전자에 가깝지 않았을까.

 









COVER STORY